김기서 강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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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서 강학당
Kim Gi-seo’s Lecture Hall
김기서 강학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기서 강학당
영문명칭 Kim Gi-seo’s Lecture Hall
한자 金麒瑞 講學堂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 9번지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지정(등록)일 1981년 4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김기서 강학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강학당'은 학문이나 교리를 가르치던 교육 시설이다. 김기서 강학당은 조선 명종 때인 1548년에 김기서가 ‘전불사’라는 사찰의 터에다 세운 강학당이다.

이곳에는 제사를 지내는 노산사, 유학을 가르치던 강학당 등이 있다. 강학당은 앞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조선 초기의 소박하고도 중후한 건축 양식을 보인다. 강학당의 상량문*은 직접 볼 수 있도록 옆면에다 써 놓았는데, 이는 당시 여느 건축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고창 호동 마을에서 태어난 김기서는 조광조의 제자로, 학문이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효행이 알려지면서 중종 3년(1508)에 광릉 참봉*에 제수되기도 하였다. 당대의 대학자 양팽손의 매형이기도 한 김기서는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화를 입자 고창으로 내려와 은거하면서 강학당을 세웠다.


  • 광릉 참봉: 조선 세조의 무덤 광릉을 관리하는 관리
  • 기묘사화: 조선 중종 14년(1519)에 일어난 사화. 남곤, 심정, 홍경주 등의 훈구파가 성리학에 바탕을 둔 이상 정치를 주장하던 조광조, 김정 등의 신진파를 죽이거나 귀양을 보냈다.
  • 상량문: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이나 까닭과 공역한 날짜 및 시간 등을 적은 글

영문

Kim Gi-seo’s Lecture Hall

This lecture hall was established in 1548 by the Confucian scholar Kim Gi-seo.

Kim Gi-seo was a student of the famous scholar and civil official Jo Gwang-jo (1482-1519). Kim decided to return to Gochang, his hometown, after his teacher and colleagues were killed in the Literati Purge of 1519. He had excellent academic skills and was famous for his filial piety.

The lecture hall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and underfloor-heated rooms on either side. An unusual feature of the building is that the ridge beam, which usually has a written record of the construction of the building, has its record facing to the side rather than upwards so it can be easily read.

The lecture hall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on the former site of a Buddhist temple named Jeonbulsa. The lecture hall is located together with the family shrine of the Gwangsan Kim clan which is named Nosansa.

영문 해설 내용

이 강학당은 유학자 김기서가 1548년에 세웠다.

김기서는 조선의 유명한 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조광조(1482-1519)의 제자이다. 김기서는 1519년 사화로 스승과 동료들이 대거 희생되자 고향인 고창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학문이 뛰어났으며 효행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강학당 건물은 중앙에 대청 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다. 건물을 짓고 고친 내력과 공사 시기 등에 관한 기록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옆면에다 써놓은 것이 매우 독특하다.

이 건물의 자리에는 ‘전불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지금은 광산김씨 문중의 사당인 노산사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