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조씨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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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조씨 묘
Tomb of Lady Jo
귀인조씨묘, 두산백과.
대표명칭 귀인조씨 묘
영문명칭 Tomb of Lady Jo
한자 貴人趙氏 墓
주소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여월동 산 32
지정번호 부천시 향토유적 제6호



해설문

국문

조선 제21대 왕 영조(1724~1776 재위)의 후궁인 조씨(趙氏, 1707~1780)의 무덤이다.

조씨는 숙종 42년(1716) 10살의 나이로 입궁하였다. 영조 11년(1735) 영조의 여덟째 딸을 낳아 종4품 숙원(淑媛)이 되었지만, 딸이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영조 16년(1740) 화유옹주(和裕翁主, 1740~1777)를 낳고 종2품 숙의(淑儀)가 되었으며, 정조 2년(1778) 종1품 귀인(貴人)이 되었다.

조씨의 묘는 원래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작동에 있었다. 원래의 자리는 봉분 주변을 거대한 돌이 에워싼 명당에 남향으로 위치해 당시 왕실 묘의 위용과 풍수 관념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이 지역에 도로공사 등이 이어지면서, 인근에 있던 화유옹주의 묘와 함께 2005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봉분 주위에는 낮은 담을 둘렀고, 봉분 앞에는 묘비, 혼이 나와 노닌다는 혼유석, 제물을 차려 놓는 상석, 향로를 올려놓는 향로석 등을 갖추었다. 묘비는 정조 21년(1797)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화유옹주의 남편 황인점(黃仁點, 1740~1802)이 지었다.

무덤 왼쪽에 화유옹주 부부의 합장묘가 있다.

영문

Tomb of Lady Jo

This is the tomb of Lady Jo (1707-1780), a royal concubine of King Yeongjo (r. 1724-1776)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Lady Jo joined the palace in 1716. In 1735, she gave birth to King Yeongjo’s eighth daughter and was promoted to a fourth-tier rank, but the child died the following year. In 1740, she gave birth to Princess Hwayu (1740-1777) and was promoted to a second-tier rank. In 1778, she was promoted to a first-tier rank.

Originally, the tomb was located in Jak-dong, about 2 km to the west, but was moved to its current site in 2005 due to road construction. It is said that the original location, which was an auspicious site facing south and surrounded by massive stones, aided in the understanding of the majesty and feng shui of royal family tombs of the time.

The burial mound is surrounded on three sides by low stone enclosure walls. The stone sculptures in front of the mound include a tombstone, a spirit seat, a table, and an incense table. The tombstone was erected in 1797. Its inscription was composed by Hwang In-jeom (1740-1802), the husband of Princess Hwayu. To the left is the tomb of Princess Hwayu and her husband.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제21대 왕 영조(재위 1724-1776)의 후궁인 조씨(1707-1780)의 무덤이다.

조씨는 1716년에 입궁하였다. 1735년 영조의 여덟째 딸을 낳아 종4품의 품계를 받았지만 딸이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1740년 화유옹주(1740-1777)를 낳고 종2품의 품계를 받았으며, 1778년 종1품이 되었다.

조씨의 묘는 원래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작동에 있었는데, 도로공사로 인해 2005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원래의 자리는 봉분 주변을 거대한 돌이 에워싼 명당에 남향으로 위치해 당시 왕실 묘의 위용과 풍수 관념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봉분 주위에는 낮은 담을 둘렀고, 봉분 앞에는 묘비, 혼유석, 상석, 향로석 등을 갖추었다. 묘비는 1797년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화유옹주의 남편 황인점(1740-1802)이 지었다. 무덤 왼쪽에 화유옹주 부부의 합장묘가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