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유 신도비
| 권상유 신도비 Stele of Gwon Sang-y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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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권상유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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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칭 | Stele of Gwon Sang-yu |
| 한자 | 權尙遊 神道碑 |
| 주소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두곡리 산49-1 |
| 지정(등록) 종목 | 금산군 향토유산 |
| 시대 | 1741년(영조 17) |
| 수량/면적 | 높이 167.0cm, 너비 71.5cm, 두께 34.5cm |
해설문
국문
신도비(神道碑)는 조선시대 2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사람의 무덤 앞에 그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은 조선 후기 문신 권상유(權尙遊, 1656~1724)의 공적을 적고 있다. 권상유는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의 동생이며,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94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수원부사·대사간·전라관찰사·개성유수·도승지 등 내외 관직을 두루 거치며 명망을 쌓았고, 1715년 형조판서, 이후 이조판서에 올라 숨은 인재를 많이 등용하였다. 그러나 1721년 신임사화 때 탄핵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1741년(영조 17) 신원이 회복되고 시호를 ‘정헌’이라 내렸다.
신도비의 기록에 따르면 처음에는 충북 청풍의 선산에 장례하였으나, 차남 권혁(權爀)이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면서 신도비도 함께 세웠다. 비석은 1741년(영조 17)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영의정 이의현(李宜顯)이 짓고 영의정 유척기(兪拓基)가 전액(篆額)을 하였으며, 민우수(閔遇洙)가 글씨를 썼다.
영문
Stele of Gwon Sang-yu
This stele was erected in 1741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Gwon Sang-yu (1656-1724),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Gwon Sang-yu was a member of the Andong Gwon clan, the younger brother of the renowned scholar Gwon Sang-ha (1641-1721), and a disciple of Song Si-yeol (1607-1689), a civil official and eminent scholar. After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in 1694, he served in various official posts, including governor of Jeolla-do Province, magistrate of Gaeseong, minister of punishments, and minister of personnel. However, he was impeached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721, after which he returned to his hometown of Cheongpung (present-day Jecheon area of Chungcheongbuk-do Province) and spent the rest of his life there. His reputation was posthumously restored in 1741.
The inscription on the stele was composed by Yi Ui-hyeon (1669-1745), who served as chief state councilor, and was calligraphed by the civil official Min U-su (1694-1756). The title inscription was written by Yu Cheok-gi (1691-1767), who also served as chief state councilor. According to the inscription, Gwon Sang-yu’s tomb was originally located in Cheongpung, but his second son Gwon Hyeok (1694-1756) moved the tomb to its current location and erected this stele.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조선시대의 문신 권상유(1656-1724)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41년에 세워졌다.
권상유는 안동권씨로, 저명한 학자인 권상하(1641-1721)의 동생이며, 문신이자 대학자인 송시열(1607-1689)의 제자이다. 1694년 문과에 급제한 후 전라도관찰사, 개성유수,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그러나 1721년 사화 때 탄핵을 받았고, 이후 고향인 청풍(지금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 1741년 신원이 회복되었다.
신도비의 비문은 영의정 이의현(1669-1745)이 지었고, 글씨는 문신 민우수(1694-1756)가 썼으며, 비석의 제목은 영의정 유척기(1691-1767)가 썼다. 비문에 따르면 권상유의 묘소는 원래 청풍에 있었으나, 차남 권혁(1694-1756)이 묘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이 신도비를 세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