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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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 유적
Hwangsaebawi Martyrs’ Site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 유적
영문명칭 Hwangsaebawi Martyrs’ Site
한자 公州 황새바위 天主敎 殉敎 遺蹟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 1-20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기념물
지정(등록)일 2008년 12월 22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소유자 (재)대전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관리자 (재)대전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5,776.1㎡
웹사이트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2021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유적은 조선 시대 충청감영에 갇힌 천주교인을 처형했던 곳으로 한국천주교회의 대표적인 순교 성지이다.

‘황새바위’라는 지명은 이곳에 황새들이 많이 서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천주교 신자들이 항쇄(項鎖)*라고 불리는 형틀을 한 채 처형을 당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황새바위에서 최초로 순교한 천주 교인은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金大建)의 외조부 이존창(李存昌)이다. 그는 신유박해 때인 1801년 4월 9일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 때 공주에서 순교한 사람은 기록상 190여 명이 확인된다. 주로 감옥 등 은밀한 곳에서 비밀리에 집행되는 처형을 제외하고, 참수형 등 공개적으로 실시되는 형벌을 받은 이들 중 다수가 이곳 황새바위에서 순교했다. 현재까지 황새바위 순교자 중 이름이 밝혀진 사람만 무려 248명에 이른다.

1980년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황새바위의 성역화 작업이 추진되었다. 1984년 성지를 담당하는 신부가 부임하였고, 1985년에는 순교자의 이름을 새긴 무덤경당 및 순교탑을 세웠다.


  • 항쇄: 죄인의 목에 씌우던 형틀로 흔히 ‘칼’이라고도 함.

2025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 유적은 조선 시대 충청감영*으로 압송한 천주교인을 처형했던 참수터로 한국천주교회의 대표적인 순교 성지이다. ‘황새바위’라는 지명은 이곳에 황새들이 많이 서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는가 하면, 천주교 신자들이 항쇄**라고 불리는 형틀을 한 채 처형당한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황새바위에서 최초로 순교한 천주교인은 이존창(李存昌)이다. 그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金大建)의 외증조부 격으로, 신유박해 때인 1801년 4월 9일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에 공주에서 순교한 사람은 기록상 190여 명이다. 주로 감옥 등 은밀한 곳에서 비밀리에 집행되는 처형을 제외하고, 참수형과 같이 공개적인 형벌을 받은 이들 중 다수가 이곳 황새바위에서 순교했다. 현재까지 황새바위 순교자 중 이름이 밝혀진 사람만 무려 337명에 이른다.

1980년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황새바위의 성역화 작업을 추진하였고, 1984년 성지를 담당하는 신부가 부임하였다. 1985년에는 순교자의 이름을 새긴 무덤경당 및 순교탑이 세워졌다.


  • 충청감영(忠淸監營):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된 충청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관청
  • 항쇄(項鎖): 죄인의 목에 씌우던 형틀로 흔히 ‘칼’이라고도 함.

영문

Hwangsaebawi Martyrs’ Site

2021

This is the site of the martyrdom of Catholic followers arrested by the Chungcheong-do Provincial Office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is a representative martyrs’ site in the history of Korean Catholicism.

This place was known as Hwangsaebawi, meaning “Rock of the White Birds,” because many oriental white storks inhabited it. Another theory about the name is that it comes from the large wooden board, called hangswae in Korean, placed around the necks of the Catholic followers before execution.

The first Catholic follower executed at Hwangsaebawi was Yi Jon-chang (1759-1801), the maternal grandfather of the first Korean priest Andrew Kim Tae-gon (1821-1846). There were about 190 recorded executions in Gongju during the persecution of Catholics which began in 1866. Apart from executions carried out in secret at confidential places such as jails, most of those who received publicly conducted punishments such as beheading were executed here. Thus far, the names of 248 people who were executed at Hwangsaebawi have been made known.

The Catholic Church began the establishment of this holy site in 1980 and in 1984, a priest was appointed to oversee the site. In 1985, a tomb lecture hall and martyrs’ monument inscribed with the names of the martyrs were built.

2025

This site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Catholic martyrdom sites in Korea. Catholic followers arrested by the Chungcheong-do Provincial Office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were executed here.

The name Hwangsaebawi, meaning “Stork Rock,” is said to have originated either from the many storks that once inhabited the area or from hangswae, a heavy wooden restraint placed around the necks of Catholic followers before their execution.

The first known martyr at Hwangsaebawi was Yi Jon-chang (1759-1801), the maternal grandfather of Korea’s first Catholic priest, Andrew Kim Tae-gon (1821-1846). Yi was beheaded here in 1801. During the major wave of Catholic persecution that began in 1866, about 190 people are recorded to have been martyred in Gongju. Among those subjected to public executions, especially by beheading, many were killed at this very site. To date, the names of 337 people martyred at Hwangsaebawi have been identified.

In 1980, the Catholic Church began efforts to sanctify the site. A resident priest was appointed in 1984, and in 1985, a tomb chapel and a martyrs’ monument inscribed with the names of the martyrs were constructed.

영문 해설 내용

2021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에 체포된 천주교인을 처형했던 곳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대표적인 순교성지이다.

‘황새바위’라는 지명은 이곳에 황새들이 많이 서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 당하기 전에 ‘항쇄’라고 불리는 형틀을 목에 차고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황새바위에서 최초로 순교한 천주교인은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1821-1846)의 외조부 이존창(1759-1801)이다. 그는 1801년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1866년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 때 공주에서 순교한 사람은 기록상 190여 명이 확인된다. 주로 감옥 등 은밀한 곳에서 비밀리에 집행되는 처형을 제외하고, 참수형 등 공개적으로 실시되는 형벌을 받은 이들 중 다수가 이곳 황새바위에서 순교했다.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이들 중 현재까지 이름이 밝혀진 사람들만 무려 248명에 이른다.

1980년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황새바위의 성역화 작업이 추진되었다. 1984년 성지를 담당하는 신부가 부임하였고, 1985년에는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무덤 경당 및 순교탑을 건립하였다.

2025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에 체포된 천주교인을 처형했던 곳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대표적인 순교성지이다.

‘황새바위’라는 지명은 이곳에 황새들이 많이 서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 당하기 전에 ‘항쇄’라고 불리는 형틀을 목에 차고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황새바위에서 최초로 순교한 천주교인은 이존창(1759-1801)이다. 이존창은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1821-1846)의 외조부로, 1801년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1866년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 때 공주에서 순교한 사람은 기록상 190여 명이다. 주로 감옥 등 은밀한 곳에서 비밀리에 집행되는 처형을 제외하고, 참수형과 같이 공개적인 형벌을 받은 이들 중 다수가 이곳 황새바위에서 순교했다.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이들 중 현재까지 이름이 밝혀진 사람들만 무려 337명에 이른다.

1980년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황새바위의 성역화 작업이 추진되었다. 1984년 성지를 담당하는 신부가 부임하였고, 1985년에는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무덤 경당 및 순교탑이 세워졌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