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숙종대왕 태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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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숙종대왕 태실비
Steles from the Placenta Chamber of King Sukjong, Gongju
공주 숙종대왕 태실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공주 숙종대왕 태실비
영문명칭 Steles from the Placenta Chamber of King Sukjong, Gongju
한자 公州 肅宗大王 胎室碑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 산 64-1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1호
지정(등록)일 1992년 12월 8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공주 숙종대왕 태실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공주 숙종대왕 태실비는 조선의 제19대 임금인 숙종(1661~1720, 1674~1720 재위)의 태(胎)를 보관하는 태실에 세운 비이다. 태실은 왕실 자녀의 태를 보관하는 곳이다. 예로부터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져 태를 잘 보존하면 자녀가 건강하다고 믿었다. 조선 왕실에서는 명당을 찾고 좋은 날을 골라 태를 모셨으며, 태실 앞에 이를 기리는 비를 세웠다. 일반적으로 처음 태를 모실 때는 태실의 장식을 호화롭게 하지 않지만 태실의 주인이 왕이 되면 태실 주변의 석물*을 새로 만들었다.

숙종대왕 태실비는 1661년(현종 2)과 1683년(숙종 9)에 걸쳐 세웠다. 연꽃 봉오리 모양의 머릿돌을 얹은 작은 비석은 숙종이 태어난 후 4개월 만에 세운 것으로 ‘아지비(阿只碑)’라고도 부른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세운 태실비는 흉년으로 인해 숙종이 즉위한 후 9년 만에 세웠다.

숙종의 태는 1928년 무렵 경기도 양주로 이장되었고, 한때 훼손된 채 남아 있던 태실비는 1991년에 보수하였다.


  • 석물: 무덤 앞에 세우는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돌 따위의 돌로 만든 물건.


  • 숙종의 태는 1928년 무렵 경기도 양주로 이장되었고 → 숙종의 태실은 1930년 고양 서삼릉으로 옮겨졌으며, [1]

  1. *“숙종대왕 태실 쇼와5년 5월 충남 공주군 목동면 이봉”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음. 출처: 이왕직(李王職) 예식과(禮式課), 『http://jsg.aks.ac.kr/dir/view?catePath=&dataId=JSG_K2-2910 태봉(胎封)』, 1928,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 "숙종 태실지", 서삼릉 위키, 한국학중앙연구원.

영문

Steles from the Placenta Chamber of King Sukjong, Gongju

These two steles were erected in front of the placenta chamber of King Sukjong (1661-1720, r. 1674-1720), the 19th ruler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 placenta chamber is where a nested jar containing a royal baby’s placenta and umbilical cord were enshrined. During the Joseon dynasty, a newborn baby’s placenta was regarded as the origin of life, and preserving it would ensure a healthy, advantageous life for the child. Because this was especially important to the royal family, they took great effort to find the most auspicious place and time to build a placenta chamber. Commemorative steles were also erected in front of such placenta chambers. When the owner of the placenta became a king, additional stone sculptures were installed around the chamber. The ritual of placenta chamber construction is unique to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Japanese authorities relocated most of the Joseon royal family’s placenta jars to the West Three Royal Tombs in Goyang and destroyed the chambers in attempts to invalidate the dynasty’s legitimacy. In 1930, King Sukjong’s placenta chamber was also desecrated and the placenta jar was removed. The steles were renovated in 1991.

The smaller stele with a capstone shaped like a lotus bud was erected in 1661, four months after King Sukjong’s birth. The larger stele consisting of a tortoise-shaped pedestal, body stone, and a capstone engraved with a pair of dragons was erected in 1683, nine years after King Sukjong’s enthronement.

영문 해설 내용

이 2기의 비석은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1661-1720, 재위 1674-1720)의 태실 앞에 세웠던 것이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녀의 태(胎)를 봉안한 태항아리를 모신 석실이다. 예로부터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고, 태를 잘 보존하면 자녀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선 왕실에서는 명당을 물색하고 길일을 택해 태를 봉안하였으며, 태실 앞에는 이를 기념하는 태실비를 세웠다. 태실의 주인이 왕이 되면 태실 주변의 석물을 새로 만들었다. 태실을 세우는 이러한 의식은 한국에 유일하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조선왕조를 부정하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던 조선 왕실의 태실을 파괴하고, 태항아리를 고양 서삼릉 경내로 옮겨 안장하였다. 숙종의 태항아리도 1930년에 옮겨졌고, 태실비는 훼손된 채 남아있던 것을 1991년에 보수하였다.

연꽃 봉오리 모양의 머릿돌을 얹은 작은 비석은 1661년 숙종이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세워졌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몸돌, 용을 새긴 머릿돌로 이루어진 큰 비석은 숙종이 즉위한 지 9년 만인 1683년에 세워졌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공주_숙종대왕_태실비 Object 공주_숙종대왕_태실비
조선_숙종 Actor 조선_숙종(재위_1674-1720)
아지비 Object 아지비(阿只碑)
경기도_양주 Place 경기도_양주
숙종_태항아리 Object 숙종_태항아리
L34-0321-0000 Heritage (충청남도_문화재자료_제321호)_공주_숙종대왕_태실비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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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_태항아리 조선_숙종 isRelatedTo
공주_숙종대왕_태실비 아지비 has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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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