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방단계단형 적석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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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방단계단형 적석유구 公州 武寧王陵과 王陵園 方壇階段形 積石遺構
Square Terraced Stone Remains (Tomb of King Muryeong and Royal Tombs, Gongju)
Goto.png 종합안내판: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해설문

국문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방단계단형 적석유구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정상에 있는 돌로 쌓은 시설물이다. 정사각형의 평면 3단으로 쌓았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계단 모양이다.

처음 조사할 당시 붉은색의 점토가 깔려 있었고 내부에서 백제의 대표적인 토기인 세 발 달린 토기(삼족토기)가 출토되었다. 조사 당시 시신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백제 한성 도읍기에 만들어진 돌무지무덤*이자 개로왕**의 가묘(假墓)***로 추정하고 있으며 대형 무덤의 형태로 복원하였다. 최근 다시 진행된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웅진 도읍기 왕릉원의 제사 시설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 돌무지무덤: 시신을 놓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묘역을 만든 무덤. 적석총(積石塚)이라고도 함.
  • 개로왕: 백제 제21대 왕(455~475).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으로 한성이 함락하여 목숨을 잃음.
  • 가묘: 정식으로 묘를 쓰기 전에 임시로 사용한 묘.

영문

Square Terraced Stone Remains (Tomb of King Muryeong and Royal Tombs, Gongju)

This earthen mound, located at the highest point in the Baekje Royal Tombs complex, covers the remains of a square, three-tier, terraced stone structure. An archaeological survey of the site revealed a layer of red clay inside the structure, as well as tripod earthenware representative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Following the survey, the remains were covered with soil in the shape of a burial mound.

The remains are considered to be a stone mound tomb made in the period between 18 BCE and 475 CE when Hanseong (today’s Seoul area) was Baekje’s capital. More specifically, it is presumed to have served as a temporary resting place for King Gaero (r. 455-475), the 21st king of Baekje, before the king’s official tomb could be constructed, thus explaining why no bodily remains were found inside. Recent archaeological surveys alternatively suggest that the remains were a ritual facility of the royal tombs used between 475 and 538 when Ungjin (today’s Gongju area) was Baekje’s capital.

영문 해설 내용

무령왕릉과 왕릉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유구는 정사각형의 평면 3단으로 돌을 쌓았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모양이다. 조사 당시 붉은색의 점토가 내부에 깔려 있었고, 백제의 대표적인 토기인 세 발 달린 토기가 출토되었다. 조사 이후 대형 무덤의 형태로 조성하였다.

이 유구는 백제가 한성(지금의 서울 지역)에 도읍을 두고 있던 시기(18 BCE-475 CE)에 만들어진 돌무지무덤으로 여겨진다. 시신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제21대 개로왕(재위 455-475)의 묘를 정식으로 만들기 전에 임시로 사용한 가묘로 추정된다. 최근의 발굴조사를 통해서는 백제가 웅진(지금의 공주)에 도읍을 두었던 시기(475-538)에 왕릉원의 제사 시설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갤러리

송산리고분군, 백제역사유적지구 3차원 기록화 구축 및 활용. http://3d.baekje-heritage.or.kr/01/App_CCWebViewer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