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송학동 고분군(가야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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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송학동 고분군
Ancient Tombs in Songhak-dong, Goseong
고성 송학동 고분군,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대표명칭 고성 송학동 고분군
영문명칭 Ancient Tombs in Songhak-dong, Goseong
한자 固城 松鶴洞 古墳群
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470번지 일원
지정번호 사적 제119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시대 가야
수량/면적 64,923㎡
웹사이트 고성 송학동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송학동고분군은 김해의 금관가야를 대신해 5세기부터 후기 가야연맹의 유력한 해상세력으로 떠오른 소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한반도 남부 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고성분지 중심부의 구릉지에 분포한다.

5세기 후반에 축조된 1호분과 6세기 전반에 축조된 2·3호분은 구릉지의 정상부에 연접하고 있고, 그 좌우 능선에 봉토분 8기가 위치한다. 1~3호분은 백제나 일본에서 유행하던 봉분을 먼저 쌓고, 쌓은 봉분을 다시 파내어 석곽이나 석실을 축조하는 분구묘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1~3호분에서 출토된 부장품은 소가야의 계층구조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왕묘에는 그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는 갑옷, 마구와 같은 물품을 부장하지만 주위에 배치된 석곽묘에는 간단한 철기와 토기만 부장하여 차이를 드러낸다. 또한 소가야의 국제괸계를 보여주는 대가야·백제·일본의 토기와 마구 등이 출토되어 소가야가 가야연맹의 교역창구였음을 증명한다.

송학동고분군은 중국-백제-가야-왜를 연결하는 해양 교역로의 중심에 위치한 소가야의 특색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 고분군이다.

영문

Ancient Tombs in Songhak-dong, Goseong

These tombs are presumed to have been built between the 5th and 6th centuries for the rulers of So Gaya, one of the members of the Gaya confederacy (42-562). So Gaya was located in the southern area of the Gaya confederacy, which is today’s Goseong and Hadong areas, and was the center of a marine trade route linking China, Baekje, Gaya, and Japan. So Gaya developed into a powerful polity in the 5th century and is presumed to have been annexed by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in the mid-6th century.

Since the 1910s, a number of excavations and surveys have been conducted here, revealing that there are approximately 14 tombs scattered around a low hill (about 25 m above sea level). Among them, the three tombs on the highest location were built by a “mound burial” method, in which an earthen mound was built first, and then stone-lined pits or stone chambers for placing the body were made by digging into the mound. This method was also popular in Baekje and Japan.

Burial goods found inside the tombs show the social status of the deceased. The larger tombs of the highest rulers include armor and horse harnesses, while smaller stone-lined tombs around them only include simple ironware and pottery. Also, pottery and horse harnesses from Dae Gaya, Baekje, and Japan have been found in the tombs, demonstrating So Gaya’s active exchange with neighboring kingdoms.

영문 해설 내용

이 고분군은 가야연맹의 한 나라인 소가야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5세기부터 6세기까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가야가 있던 가야 남부 지역(지금의 고성, 하동 지역)은 중국-백제-가야-일본을 연결하는 해양 교역로의 중심이었다. 소가야는 5세기부터 후기 가야의 주요 해상세력으로 성장했으며, 6세기 중엽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인 조사 및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해발 25m 정도의 낮은 구릉지에 14여 기의 봉분이 분포하고 있다. 구릉 정상부에 축조된 3기의 고분은 봉분을 먼저 쌓고, 쌓은 봉분을 다시 파내어 석곽이나 석실을 만드는 분구묘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백제와 일본에서 유행하였다.

무덤에서 발견된 부장품은 피장자의 계층적 신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왕의 묘에서는 갑옷, 마구와 같은 부장품이 발견되었지만, 주위에 배치된 석곽묘에는 간단한 철기와 토기만 부장하였다. 또한 대가야, 백제, 일본의 토기와 마구들이 출토되어 소가야의 활발한 국제관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