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이씨 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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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이씨재사
Ritual House of the Goseong Yi Clan
고성이씨 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성이씨재사
영문명칭 Ritual House of the Goseong Yi Clan
한자 固城李氏齋舍
주소 경북 안동시 예안면 아마리길 243 (기사리)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호
지정일 1973년 8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고성이씨 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성 이씨 재사는 고성 이씨 가운데 안동에 처음 들어온 이증(李增, 1419~1480)과 그 부인인 경주 이씨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이증의 아버지 이원(李原, 1368~1429)은 조선 초 태종이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왕위에 오르는 데 협력하여 공신이 되었으며, 세종 때 좌의정을 지냈다. 이러한 아버지의 공훈으로 이증은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합격한 후 음서(蔭敍)*로 진해·영산현감을 지냈다. 관직에 곧 물러나서는 고향인 안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재사는 1600년 무렵 세워졌으며, 앞면에는 ‘수다재(水多齋)’란 현판이 걸려 있다. ‘ㅁ’자형 건물로 대청과 온돌방이 있고, 부엌과 광, 뒤주가 함께 있다. 원래는 월곡면 미질동에 있었으나 안동댐을 건설하면서 1974년에 예안면 기사리로 옮겼다가 2000년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 음서(蔭敍):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공을 세웠거나 높은 벼슬을 한 양반의 자손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제도.

영문

Ritual House of the Goseong Yi Clan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memorial rituals and the maintenance of the tomb of Yi Jeung (1419-1480), the first person from the Goseong Yi clan to settle in Andong, and his wife Lady Yi. It was first built around the year 1600.

Yi Jeung was a son of Yi Won (1368-1429), who was honored as a meritorious subject for assisting King Taejong (r. 1400-1418) during a power struggle for the throne and served as second state councilor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r. 1418-1450). Yi Jeung passed the literary licentiate examination in 1453 and was given an official post due to his father’s achievements. He served as magistrate of Jinhae and Yeongsan, but left his post shortly thereafter and returned to the Andong area where he taught students.

The building has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It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underfloor-heated rooms, a kitchen, a storage room, and a rice chest. The name of the ritual house is Sudajae, meaning “Hall of Bountiful Water.”

The ritual house was moved in 1974 from its original location in Mijil-dong, Wolgok-myeon to Gisa-ri, Yean-myeon due to the construction of the Andong Dam. In 2000, the buildings were again moved to their current location, still within Gisa-ri.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고성이씨 가운데 안동에 처음 들어온 이증(李增, 1419~1480)과 그 부인인 경주이씨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립한 건물이다. 1600년경에 처음 지어졌다.

이증의 아버지 이원(李原, 1368~1429)은 조선 초 태종이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왕위에 오르는 데 협력하여 공신이 되었으며 세종 때 좌의정을 지냈다. 이러한 아버지의 공훈으로 이증은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 벼슬길에 올랐으나, 곧 물러나 고향인 안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재사는‘ㅁ’자형 건물로 대청과 온돌방이 있고 부엌과 광, 뒤주가 함께 있다. 재사의 이름은 수다재이다.

원래는 월곡면 미질동에 있었으나 안동댐을 건설하면서 1974년에 예안면 기사리로 옮겼다가 2000년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