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직제학 양수생 처 열부이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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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직제학 양수생 처 열부이씨려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Yi
고려직제학 양수생 처 열부이씨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려 직제학 양수생 처 열부이씨려
영문명칭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Yi
한자 高麗 直提學 楊首生 妻 烈婦李氏閭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568번지
국가유산 종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2호
지정(등록)일 2000년 11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고려직제학 양수생 처 열부이씨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정려(旌閭)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해 효자・충신・열녀 등이 살던 고을에 붉은 칠을 한 문을 세워 표창하던 일을 말한다.

이 정려비각은 고려 공민왕 때 직제학을 지낸 양수생의 아내 이씨부인의 곧고 굳건한 신념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씨부인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당시의 풍습대로 재혼하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를 마다하고, 순창군 구미리로 내려와 살면서 아들 양사보를 키워 가문을 잇도록 하였다. 지금도 후손들과 마을 주민들은 양사보의 후손 중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온 것은 모두 이씨부인의 덕행과 은혜 덕분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씨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부인의 행적을 알게 된 조정에서는 세조 13년(1467)에 정려를 내려 후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하였다. 정려비와 정려각은 이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영조 50년(1774)에 세워졌다. 이 정려비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영문

Commemorative Pavilion of Lady Yi

This pavilion was built in 1774 to house a stele commemorating the matrimonial devotion of Lady Yi to her husband Yang Su-saeng (?-1377), a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ve stele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ere displayed in pavilions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Yang Su-sae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76 and was given an official post, but died the following year at a young age. Despite the encouragement of those around her, Lady Yi refused to remarry. Instead, the young widow moved to the Sunchang area, where she devoted herself to raising her son Yang Sa-bo (1377-?) so that the family line could continue. Many of Yang Sa-bo’s descendants went on to become renowned figures, which is believed by the family to be all thanks to Lady Yi’s virtue and grace.

Lady Yi was formally commemorated by the royal court in 1467, but it took over 200 years for a commemorative stele to be erected. According to a folk tale, the stele perspires whenever there is an event of national importance.

영문 해설 내용

이 정려각은 고려시대의 문신인 양수생(?-1377)의 처 이씨부인에게 내려진 정려를 모시기 위해 1774년에 세워졌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정려각을 세워 모셨다.

양수생은 1376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이듬해에 요절하였다. 이씨 부인은 재혼하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를 마다하고 순창 지역으로 이주해 살면서 아들 양사보(1377-?)를 키워 가문을 잇도록 하였다. 후손들은 양사보의 후손 중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온 것은 모두 이씨부인의 덕행과 은혜 덕분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씨 부인의 행적을 알게 된 조정에서는 1467년에 정려를 내렸고, 정려비와 정려각은 이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뒤에 세워졌다. 이 정려비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