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마을 수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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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수운정
Suunjeong Pavilion in Yangdong, Gyeongju
경주 양동마을 수운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양동마을 수운정
영문명칭 Suunjeong Pavilion in Yangdong, Gyeongju
한자 慶州 良洞마을 水雲亭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45-20
지정(등록) 종목 국가민속문화재 제80호
지정(등록)일 1979년 1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필지/684㎡
웹사이트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해설문

국문

이 정자는 청허재 손엽(淸虛齋 孫曄, 1544~1600)이 선조 15년(1582)에 지었다. 그는 ‘물과 같이 맑고 구름과 같이 허무하다’는 뜻을 지닌 ‘수청운허(水淸雲虛)’에서 ‘수’자와 ‘운’자를 따서 정자 이름을 짓고, 나머지 글자로는 자신의 호로 삼았다.

임진왜란 때 경주부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이 곳으로 옮겨 소실될 뻔한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마을에서 떨어진 높은 봉우리에 홀로 서 있어 앞쪽의 넓은 안강평야와 형산강의 경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수운정 배치 평면도[1]

영문

Suunjeong Pavilion was built in 1582 by Son Yeop (1544-1600), a scholar of the mid-Joseon period.

So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68, yet chose not to hold a government post, instead concentrating on his studies in his hometown. Upon the outbreak of Japanese invasions in 1592, he moved the portrait of King Taejo, th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from the royal portrait shrine in Gyeongju to this house. The royal portrait shrine was destroyed during the invasions, but the king’s portrait survived thanks to Son's smart and loyal thinking.

The pavilion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and a room, with a separate servants’ quarters. The wooden-floored hall features a plaque bearing the pavilion’s name “Suunjeong (水雲亭),” which means “a pavilion as clear as water and as empty as clouds."

영문 해설 내용

수운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손엽(1544-1600)이 1582년에 지은 정자이다.

손엽은 1568년 과거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에 매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주에 있던 진전(眞殿)에서 태조의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진전은 전란에 소실되었지만, 영정은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정자는 대청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별도의 행랑채가 딸려있다. 대청에 ‘수운정(水雲亭)’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으며, ‘수운정’은 ‘물과 같이 맑고 구름과 같이 허무하다’는 뜻이다.

갤러리

VR Tour

3D문화유산

주석

  1. "경주 양동마을 수운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경주 양동마을 수운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