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성동동 전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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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성동동 전랑지
Archaeological Site in Seongdong-dong, Gyeongju
경주 성동동 전랑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성동동 전랑지
영문명칭 Archaeological Site in Seongdong-dong, Gyeongju
한자 慶州 城東洞 殿廊址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성동동 4번지
지정번호 사적 제88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건물지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32,875㎡
웹사이트 경주 성동동 전랑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통일신라시대의 건물이 있던 자리로 1937년 북천 제방공사 중에 건물지가 드러나 발굴조사를 하였다. 확인된 건물 자리는 전당터[殿堂址; 전각 같은 큰 건물 터] 6곳과 장랑터[長廊址; 긴 복도 터] 6곳, 문터 2곳, 담장터 3곳이며, 평와(平瓦)와 벽돌을 써서 만든 배수시설 2곳, 우물터 1곳이 확인되었다.

그 후 1993년 조사에서 대형 건물터와 부속 건물터 5개소, 담장터 2개소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유물로는 많은 양의 기와와 납석(蠟石)으로 만든 그릇, 토기 뼈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건물터와 주춧돌 형식, 출토된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임은 분명하지만 건물의 성격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배치형식이나 유구의 형태로 보아 북궁(北宮)터로 추정된다.

영문

Archaeological Site in Seongdong-dong, Gyeongju

This archaeological site dates to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The character of this site is unknown for certain. It may have been the house of an aristocrat, a government office, or the Northern Royal Palace.

This site was discovered and first excavated in 1937. It was excavated again in 1993. It consists of the remains of six main halls, one large building with five auxiliary buildings, six corridor buildings, two gates, five stone walls, two water drainage facilities made of flat roof tiles and bricks, and one well.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site include roof tiles, bowls made of agalmatolite, and earthenware urns.

  • 출토 유물의 단복수 확인 필요.
  • 용례집의 영문 명칭은 Mansion Site로 되어 있으나, 현재 건물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고 했으므로 Archeological Site in Seongdong-dong으로 수정 필요.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의 유적지이다. 이곳에 있던 건물의 성격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나, 귀족의 집, 관청, 또는 북궁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1937년에 처음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1993년 다시 한번 조사되었다. 전당터 6곳, 대형 건물터 1곳와 부속 건물터 5곳, 장랑터 6곳, 문터 2곳, 담장터 5곳, 평와와 벽돌로 만든 배수시설 2곳, 우물터 1곳이 확인되었다.

유물로는 기와, 납석(蠟石)으로 만든 그릇, 토기 뼈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