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옥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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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옥산성
Oksanseong Fortress, Geoje
대표명칭 거제 옥산성
영문명칭 Oksanseong Fortress, Geoje
한자 巨濟 玉山城
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산28번지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10호
지정일 1974년 2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8,157
웹사이트 거제 옥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옥산성은 거제 계룡산 자락의 수정봉(해발 143m) 정상 부분을 타원형으로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동쪽은 폭이 넓고 서쪽은 폭이 좁은 표주박 형태이다.

조선시대에는 ‘수정(水晶)산성’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서쪽 성문 입구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옥산금성(玉山金城)’이라는 문구를 따라 ‘옥산성’이라 부르고 있다.

옥산성이 자리한 거제면 일대는 현종 4년(1663)에 거제의 읍치를 고현지역에서 이곳 거제면으로 옮겨 조선시대 말기까지 거제현 관아가 위치한 곳이다.

옥산성이 만들어진 시기는 성 안에 설치되어 있는 축성비의 내용에 따라 고종 10년(1873)에 거제 백성들의 힘을 모아 축조한 것으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마지막 단계에 축조된 산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2017년 성내 집수지 및 2020년 건물지 발굴 당시 7세기의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옥산성의 최초 축조 시기는 7세기(통일신라시대) 이전임이 확인되었다.

성을 쌓은데 쓴 돌은 가까운 계룡산 자락과 인근 야산에서 구해온 것으로 크지 않은 막돌을 사용하였고, 현재 성곽은 복원 없이 원상태로 잘 남아있다.

문지는 서문지와 동문지는 2개가 있는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성문 입구를 사각형 내옹성 으로 만들어 성문을 보호하고 돌계단을 두어 성안으로 출입하게 하였다. 또한 성 안에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 투석용 몽돌 저장시설 등이 남아있다.


  • 테뫼식 산성: 산의 꼭대기를 중심으로 둘러쌓은 산성
  • 읍치 :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
  • 내옹성(內甕城): 성곽에 난 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안쪽에 설치한 이중 성곽

영문

Oksanseong Fortress, Geoje

This stone fortress, encircling Sujeongbong Peak (143 m above sea level) of Gyeryongsan Mountain, was first built around the 7th century.

This fortress had long been believed to be from the late 19th century, based on a monument inside the fortress. The inscription on this monument recorded that Song Hui-seung, the magistrate of Geoje, mobilized the local people and completed the construction of the fortress in 1873. However, through excavations conducted in 2017 and 2020, artifacts dating to the 7th century were discovered inside the fortress, suggesting that the fortress was first built much earlier than previously thought.

The sites of the fortress' eastern and western gates remain, and each had a semi-circular wall to strengthen the gate’s defenses. The sites of multiple buildings and a reservoir were also confirmed inside the fortress.

영문 해설 내용

계룡산 수정봉(해발 143m) 정상부를 돌로 둘러쌓아 만든 이 성은 7세기 경에 처음 지어졌다.

그동안 이 성의 축조 시기는 성 안에 남아있는 축성비의 기록에 따라 19세기 후반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 비석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거제부사였던 송희승이 1873년 백성들을 동원해서 이 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나 2017년과 2020년에 이루어진 발굴조사 결과 7세기의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이 성이 훨씬 이전 시기에 지어졌음이 밝혀졌다.

성에는 동쪽과 서쪽에 문터가 있고, 성문 입구에는 옹성을 만들어 성문을 보호하게 하였다. 성 안에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