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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경루를 묘사한 옛 작품들
이야기
조선시대 광주를 상징하는 누정 희경루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인과 관료, 시인과 학자들의 사유와 정서가 깃든 문화적 공간이었다. 이 누정은 광주읍성의 일부분으로,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경관 속에서 많은 이들이 글을 짓고 시를 읊으며 이상을 이야기했다.
신숙주는 일찍이 이곳에 대한 기록 신숙주 희경루기를 남겼고, 뒤를 이어 성임은 “희경루”라는 시에서 희경루의 고즈넉한 뜰과 대숲, 달빛 머무는 연못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이 시는 훗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며 지역의 명소로서 희경루의 위상을 더했다.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송순과 그의 학문적 벗 임억령, 제자 임제 등 호남 지역 문인들은 희경루를 배경으로 수많은 시문을 남긴다. 차광주희경루운, 차광주희경루운, 희경루는 그 대표적인 작품들로, 이들은 각각 면앙집, 석천시집, 임백호집 등에 수록되었다. 이 문집들은 그 자체로 지역 문인 공동체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자료이자, 희경루의 이미지가 시대별로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소세양의 차광주희경루운, 권벽의 차광주희경루운, 송인수의 차광주희경루운 등, 다수의 시인들이 희경루의 풍경과 분위기를 노래하였다. 이러한 시문들은 양곡집, 습재집, 규암집 등에 각각 수록되어 전승되었다.
17세기에도 이 전통은 이어졌다. 김상용의 망제, 이순인의 희경루, 조팽년의 희경루별여상부 등은 희경루에 대한 애정 어린 회상을 담고 있으며, 이들은 각각 선원유고, 고담일고, 계음집 등에 편입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특히 박광옥의 희경루전목사류후태호명경심은 희경루를 거쳐 간 인물들의 풍모를 기리는 글로, 당시의 사대부들이 누정과의 관계를 어떻게 기억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희경루는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의 정서적 무대이자 시대적 정신이 응축된 장소였다. 이곳을 노래한 시문들은 다양한 문집에 퍼져 수백 년을 이어왔으며, 오늘날 우리는 그 흔적을 따라 조선시대 광주의 문화적 층위를 되새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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