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C202
희경루를 묘사한 옛 작품들
이야기
조선 중기, 희경루(喜慶樓)는 단순한 누정이 아니라 수많은 문인들의 시상과 정취가 담긴 상징적 공간이었다. 광주읍성 내에 위치한 희경루는 자연 경관과 어우러진 탁월한 입지 덕분에 수많은 문사들이 이곳을 노래하였다. 조선 전기의 문신 신숙주(申叔舟)는 일찍이 「희경루기(喜慶樓記)」를 통해 이 누정의 아름다움을 기록하였고, 성임(成任)은 “호남 오십 고을 중 형승은 내 고향을 말하리”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시를 남겼다.
이후로도 송순(宋純)을 비롯해 소세양(蘇世讓), 임억령(林億齡), 백광훈(白光勳), 권벽(權擘), 이석형(李石亨) 등 당대의 문인들은 저마다 희경루에 대한 감상을 시로 남겼고, 그들의 작품은 『면앙집』, 『양곡집』, 『석천시집』 등 다수의 문집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특히 임제(林悌)의 「희경루(喜慶樓)」와 조팽년(趙彭年)의 「희경루별여상부(喜慶樓別呂尙夫)」는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희경루의 정취가 지속적으로 창작의 소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하나의 건축물에 대해 다양한 시대의 문인들이 시를 통해 반응하고, 그 기록이 후대 문집과 고문헌에 연쇄적으로 보존되어온 양상은, 희경루가 단지 지역 누정의 의미를 넘어 문학적 기념물로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스토리 그래프
이야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