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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맞선 상인단체 광주실업청년구락부

이야기

1929년 3월 11일, 광주상인들은 일본인 중심의 광주상공회에 대항하여 독자적 상인 단체인 광주실업청년구락부춘목암에서 창립하였다. 회장에는 고무신 판매상 최한영(崔漢泳)이 선출되었고, 임원으로 김태환, 김양실, 하석암 등이 포함되었으며, 주요 인사로는 심상엽, 유현상, 최경식 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상권 보호와 상인의 단결을 목표로 결집하였다.

구락부는 곧바로 활동에 나서 1929년 4월 28일 학강운동장에서 광주상민운동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지역 상인과 시민을 규합해 경제적 자주성을 천명한 집회로, 구락부의 주도적 역할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또 기관지 《상공뉴스》를 발행하여 상거래 정보와 경제 담론을 확산했으나, 광주경찰서 고등계의 단속으로 곧 중단되었다.

이후 일제는 1930년 조선상공회의소령을 제정해 민족계 상업회의소를 해산시키고 일본인 상업회의소로 흡수하려 했다. 결국 1936년 12월 22일, 광주실업청년구락부광주상공회가 통합되어 광주상공회의소가 발족하였다. 현재 농성역 인근에 위치한 상공회의소는 이러한 대립과 강제 통합의 과정을 보여주는 흔적이며, 구락부의 활동은 일제강점기 지역 상인들이 경제적 자주성을 모색한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스토리 그래프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