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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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
- 최한영(崔漢泳, 1899~1990): 1919년 광주의 3.1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29년 광주실업청년구락부를 창립하여 대표 역임, 1938년 허백련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연진회 발기인, 1945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위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에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 최한영은 전라남도 광주군(현, 광주광역시 동구 호남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부동교 아래의 작은장터에서 일어난 광주 3.10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고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되어, 1919년 9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1]
-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 임정마을복지회관 옆에 있는 전부일 장군의 효행을 기려 효행비를 세웠는데, 비문은 건립추진위원회에서 지었고 앞면 글씨는 최한영이 썼다.
- 최한영은 1929년 광주실업청년구락부 창립 당시 충장로에서 고무신 판매상을 하였으며, 광주지역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가 1990년 8월 6일에 사망하였다. 1977년 대통령 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참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1562, http://aks.ai/GC60000817, http://aks.ai/GC60001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