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당
기본 정보
| 이름 | 송해당 |
|---|---|
| 한자명 | 松海堂 |
| 위도(latitude) | 35.2087803 |
| 경도(longitude) | 126.8922265 |
| 종류 | 가옥 |
| 건립연도 | 1860년대 |
| 소재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361-2 |
정의 및 개요
건립 배경
- 송해당(松海堂)은 1860년대에 광주군 석제면 월곡리 일곡부락(현 일곡동 361-2)에 옛 농가 형태로 지어졌다.
- 1906년 광산 노씨 노문규(盧汶奎, 1850~1935)가 당시 어지러운 세태를 비관하여 자신의 종적을 숨기기 위해 송해당을 중수하고 휴양처로 삼았다.
건축문화적 특징 및 가치
- 송해당은 주초 위에 사각기둥을 세운 앞면 4칸, 옆면 1칸의 평기와 지붕으로 되어 있다.
- 송해당은 정자 형식의 건물이 아닌 옛 농가를 개조한 건물로 건물 정면에는 송해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기둥마다 판각 주련(柱聯)이 있으며, 당내에는 40여 개에 달하는 당시 유림들의 찬미시문들이 편액되어 있다.
- 송해당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제1근린공원 왼편의 일곡경로당 바로 건너편에 있다.
- 송해당은 붉은 기와로 번와(翻瓦)하고 집 앞으로 도로가 나면서 정원의 많은 부분을 잃었지만 은행나무와 동백나무들은 남아 있으며 현재는 폐가 상태이다.
관련 인물
- 송해당을 중수한 노문규는 18세 때 모든 경사(經史)를 통독할 만큼 문장이 뛰어났고 향시에 여러 번 합격하였으나 대과에는 실패하였다.
- 노문규는 한말에는 향약을 세우고 전라남도 사림의 추천으로 관찰부주사를 지냈으며 이듬해 6품인 승훈랑이 되었다.
- 노문규는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7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1935년에 풍질로 사망했다.
관련 항목
의미관계망
지도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 송해당 | http://www.gjsgcc.or.kr/ko/26/view?SEQ=2533 |
| 간행물 | 단행본 | 광주광역시, 『누정제영』, 광주광역시, 1992년, p.372 | |
| 웹리소스 |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 송해당 | http://gjstory.or.kr/sub.html?pid=48&formtype=view&code=1345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송해당 | 노문규 | 송해당은 노문규가 중수했다. | ||
| 송해당 | 일곡동 | 송해당은 일곡동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