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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링크를 통한 스토리 텔링의 기획 의도와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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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링크를 통한 스토리 텔링의 기획 의도와 결과==
 
==하이퍼링크를 통한 스토리 텔링의 기획 의도와 결과==
 
  우선 네트워크 그래프에서 ‘이태준’이라는 노드를 중심으로 한 관계망 안에서 다른 노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성을 띠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들을 선별하였고, 이에 구인회, 수연산방, 성북동문화재야행, 『시와소설』, 『문장』에 대해 네트워크 그래프에서 개인 위키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게 하였다.  
 
  우선 네트워크 그래프에서 ‘이태준’이라는 노드를 중심으로 한 관계망 안에서 다른 노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성을 띠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들을 선별하였고, 이에 구인회, 수연산방, 성북동문화재야행, 『시와소설』, 『문장』에 대해 네트워크 그래프에서 개인 위키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게 하였다.  
  이태준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관계망 중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노드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구인회를 먼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인물 노드 중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 함께 활동했던 정지용, 조용만, 이무영, 김기림, 이효석, 유치진, 최인훈과 연결되어 있다. 이 중에서 정지용의 경우 구인회와 『문장』 이라는 두 노드와 모두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이태준과 정지용이 비슷한 문학, 예술의 목표를 가지고 문학활동을 전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구인회는 경향주의 문학에 대항하여 순수예술을 추구하고 옹호하는 문단의 분위기를 형성하였고, 『문장』에서는 게재했던 작품들을 통해 이태준은 토착 인물들의 삶을 그려내고, 정지용은 조선어에 대한 세련된 감각을 들어내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이태준이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 속에 지식인들 사이에서 친서구적 경향이 등장하는 것과 같이 여러 외부적 요인이 급격하게 발생하고 자리 잡는 와중에도 자기 뜻을 잃지 않고 본연의 것, 문학과 예술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구인회 활동의 일환으로 창간되었던 잡지인 『시와소설』에서도 알 수 있다. 급격한 문명의 변화와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에 대항하여 무목적의 목적성을 통한 순수문학을 옹호하고, 개인의 고유한 진리를 담아낼 수 있는 문학을 추구했던 것은 외부의 수많은 변화로부터 문학 자체의 고유한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많은 활동을 했던 이태준의 굳은 의지가 드러난다. 이러한 이태준의 흔적을 지금에 이르러서도 엿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성북구에 있는 이태준이 실제로 거주했던 가옥인 수연산방이다. 수연산방은 이태준이 실제로 많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면서 동시에 구인회의 주요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일제 강점기 당시 구인회의 굳은 의지와 문학의 고유한 가치를 위해 고심했던 이태준이 노력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성북구에서 개량 한옥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주요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한다. 이러한 역할은 성북구문화재야행(성북동밤마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강점기 당시 성북구에서 활동했던 여러 문인의 노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체험할 기회가 제공된다. 이를 통해 성북구에서는 과거의 인문학이 역사의 기록으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아직도 우리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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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관계망 중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노드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구인회를 먼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인물 노드 중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 함께 활동했던 정지용, 조용만, 이무영, 김기림, 이효석, 유치진, 최인훈과 연결되어 있다. 이 중에서 정지용의 경우 구인회와 『문장』 이라는 두 노드와 모두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이태준과 정지용이 비슷한 문학, 예술의 목표를 가지고 문학활동을 전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구인회는 경향주의 문학에 대항하여 순수예술을 추구하고 옹호하는 문단의 분위기를 형성하였고, 『문장』에서는 게재했던 작품들을 통해 이태준은 토착 인물들의 삶을 그려내고, 정지용은 조선어에 대한 세련된 감각을 들어내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이태준이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 속에 지식인들 사이에서 친서구적 경향이 등장하는 것과 같이 여러 외부적 요인이 급격하게 발생하고 자리 잡는 와중에도 자기 뜻을 잃지 않고 본연의 것, 문학과 예술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구인회 활동의 일환으로 창간되었던 잡지인 『시와소설』에서도 알 수 있다. 급격한 문명의 변화와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에 대항하여 무목적의 목적성을 통한 순수문학을 옹호하고, 개인의 고유한 진리를 담아낼 수 있는 문학을 추구했던 것은 외부의 수많은 변화로부터 문학 자체의 고유한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많은 활동을 했던 이태준의 굳은 의지가 드러난다. 이러한 이태준의 흔적을 지금에 이르러서도 엿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성북구에 있는 이태준이 실제로 거주했던 가옥인 수연산방이다. 수연산방은 이태준이 실제로 많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면서 동시에 구인회의 주요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일제 강점기 당시 구인회의 굳은 의지와 문학의 고유한 가치를 위해 고심했던 이태준이 노력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성북구에서 개량 한옥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주요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한다. 이러한 역할은 성북구문화재야행(성북동밤마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강점기 당시 성북구에서 활동했던 여러 문인의 노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체험할 기회가 제공된다. 이를 통해 성북구에서는 과거의 인문학이 역사의 기록으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아직도 우리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25년 6월 19일 (목) 13:39 판

개인 위키페이지의 역할

구인회

이태준이 주요 구성원이었던 문학 단체인 구인회를 통해 당시 함께 활동했던 여러 독립운동가(정지용, 조용만, 이무영, 김기림, 이효석, 유치진 등)와 함께 연결 짓는 다리 역할을 한다. 또한 이태준의 가옥이었던 수연산방은 구인회의 주요 활동 장소였으며, 문학 잡지인 시와 소설은 구인회 활동의 일환으로 남아 있어 해당 노드끼리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성북동문화재야행

성북동밤마실이라고도 불리는 성북동문화재야행은 성북구에서 일 년에 특정 기간 야간에도 문화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으로, 매년 진행할 때마다 조지훈, 이태준, 김환기, 김광섭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활동과 관련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특히 성북구와 관련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활동들이 진행될 예정이기에, 앞서 위키페이지를 통해 소개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현대에서는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알게 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수연산방

수연산방은 대표적인 문인 중 한 명이었던 이태준이 실제로 오랜 기간 동안 거주하며, 많은 창작 활동을 펼쳤던 장소이다. 특히 수연산방은 이태준이 활동했던 문학 단체인 구인회의 주요 활동 무대로서 긴밀한 관계가 있다. 또한 이 곳에서 수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하여 「청복반일」, 「화두」와 같은 작품에서는 실제로 수연산방을 소재로도 활용하였기에, 작품들과도 연결 관계를 형성한다.

시와소설

『시와 소설』은 구인회의 큼직한 활동 중 하나로, 당시 정지용, 이태준, 김유정 등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문인들이 창간한 문학잡지이다. 이태준이 소속해 있던 문학 단체의 활동으로서 실제로 과거에 성북구에서 시와 소설의 밤이라는 문학 행사를 개최한다는 사실이 동아일보를 통한 기사로도 작성되었기에, 순수예술을 지향한 문인 중 한 명이었던 이태준에 관한 사건 노드 중 하나로서 기능한다. 

문장

『문장』은 이태준, 이병기, 정지용의 편집을 주도로 한 문예 잡지로, 이 또한 조선의 문학적 전통을 확립하고 재생하려 했던 문인들의 노력을 잘 보여주는 장치 중 하나이다. 실제로 많은 작품과 문학인들이 『문장』을 통해 소개되었기에, 『문장』을 중심으로 등단하거나 작품 발표의 주요 무대로 삼은 문학인들을 문장파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인물 중에서는 구인회에서도 함께 활동했던 정지용과 또 한 번 『문장』을 통해 관계성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병기와도 연결해 주는 노드이다. 또한 앞서 이태준의 작품 중 수연산방을 소재로 활용했던 「청복반일」을 『문장』에서 다루고 있어 「청복반일」을 중심으로 장소, 작품, 단체의 노드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하이퍼링크를 통한 스토리 텔링의 기획 의도와 결과

우선 네트워크 그래프에서 ‘이태준’이라는 노드를 중심으로 한 관계망 안에서 다른 노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성을 띠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들을 선별하였고, 이에 구인회, 수연산방, 성북동문화재야행, 『시와소설』, 『문장』에 대해 네트워크 그래프에서 개인 위키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게 하였다. 
이태준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관계망 중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노드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구인회를 먼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인물 노드 중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 함께 활동했던 정지용, 조용만, 이무영, 김기림, 이효석, 유치진, 최인훈과 연결되어 있다. 이 중에서 정지용의 경우 구인회와 『문장』 이라는 두 노드와 모두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이태준과 정지용이 비슷한 문학, 예술의 목표를 가지고 문학활동을 전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구인회는 경향주의 문학에 대항하여 순수예술을 추구하고 옹호하는 문단의 분위기를 형성하였고, 『문장』에서는 게재했던 작품들을 통해 이태준은 토착 인물들의 삶을 그려내고, 정지용은 조선어에 대한 세련된 감각을 들어내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이태준이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 속에 지식인들 사이에서 친서구적 경향이 등장하는 것과 같이 여러 외부적 요인이 급격하게 발생하고 자리 잡는 와중에도 자기 뜻을 잃지 않고 본연의 것, 문학과 예술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구인회 활동의 일환으로 창간되었던 잡지인 『시와소설』에서도 알 수 있다. 급격한 문명의 변화와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에 대항하여 무목적의 목적성을 통한 순수문학을 옹호하고, 개인의 고유한 진리를 담아낼 수 있는 문학을 추구했던 것은 외부의 수많은 변화로부터 문학 자체의 고유한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많은 활동을 했던 이태준의 굳은 의지가 드러난다. 이러한 이태준의 흔적을 지금에 이르러서도 엿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성북구에 있는 이태준이 실제로 거주했던 가옥인 수연산방이다. 수연산방은 이태준이 실제로 많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면서 동시에 구인회의 주요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일제 강점기 당시 구인회의 굳은 의지와 문학의 고유한 가치를 위해 고심했던 이태준이 노력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성북구에서 개량 한옥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주요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한다. 이러한 역할은 성북구문화재야행(성북동밤마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강점기 당시 성북구에서 활동했던 여러 문인의 노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체험할 기회가 제공된다. 이를 통해 성북구에서는 과거의 인문학이 역사의 기록으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아직도 우리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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