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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eseArt&Culture(2025) Research Project 06"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NUDH

(연구 대상과 수집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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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회화사 중요 화론인 남북종론을 바탕으로, 남종화의 대표 화가 원대 조맹부와 북종화의 대표 화가 북송시대 곽희의 작품을 통해 회화적 특징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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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회화에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대나무에 대해서 조사해 보고자 한다. 대나무는 예로부터 군자의 덕목을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로 절개, 청렴, 꺾이지 않는 정신을 나타내며 문인들의 정신적 자화상으로도 그려졌다. 대나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그 의미를 군자상, 인간상을 중심으로 조사하는 것이 목적이며, 중국 대나무 화풍의 변천사, 주요 화가의 작품 소개, 대나무 표현 기법, 대나무의 상징을 알아보고자 한다.
명대 동기창은 남종화와 북종화로 구분하여 남종 우위론을 주장하였으다. 그의 이론은 이후 300년 이상 중국 회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회화의 기준이 되었다. 조맹부와 곽희의 회화 작품 중심의 시각 자료를 통해, 이 두 화풍의 실제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연구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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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창의 남북종론==
 
 
동기창(董其昌:1555~1636)은 중국 명나라 때의 문인, 화가, 서예가, 정치인이다. 명나라 남직례(오늘날 강소성) 화정 사람으로 자는 현재(玄宰), 호는 사백(思白)과 향광거사(香光居士)이다. 정치가로서보다 문인, 화가, 서예가로 더 이름이 나 있으며, 명대 최고의 문인화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특히 남종화를 대성함으로써 당시의 그림 경향을 남종화 일색으로 만들기도 했다.
 
동기창은 선종의 혜능, 신수에 의해 분류된 남북종의 이론과 관점을 회화에 연결하여 화가의 출신성분에 의한 분류,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표현된 회화형식이나 화법, 창작방법에 의한 돈오와 점수 등의 특성차이로 남종화와 북종화를 구분하였다.(주석달기)
 
남종화는 문인 중심, 수묵화 위주, 내면적 사유 강조, 북종화는 직업화가 중심, 채색화 위주, 사실적 묘사 강조의 구도로 나뉘게 되고, 동기창은 이 가운데 남종화를 정통으로 보고 북종화를 비판했다. 아래의 조맹부는 남종, 곽희는 북종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주 언급된다.
 
 
[[파일:동기창사진.jpg|섬네일|가운데|동기창(董其昌:1555~1636)]]
 
  
 
==='''<span style="color:#3CB371">연구 대상과 수집 방법</span>'''===
 
==='''<span style="color:#3CB371">연구 대상과 수집 방법</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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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화 대표 조맹부의 작품(작화추색도 등)과 북종화 대표 곽희의 작품 ~을 연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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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대상은 대나무를 주제로 한 그림이며 대나무를 중심으로 그린 그림으로 범위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시기는 제한을 두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수집 방법은 CIT를 우선적으로 활용하고, DBpia 논문을 통해 내용을 조사하겠습니다.
수집 방법은 국립고궁박물원 웹사이트, CIT, 관련 논문 등을 활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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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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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줄기와 잎을 간직하는데다 줄기에 규칙적인 마디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식물이며, 그 재료는 아시아에서 일상생활 용품으로도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약용이나 식용 등으로도 즐겨 쓰여 인간의 일상사와 밀접한관련을 맺어왔다. '''대나무가 가진 상징성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동아시의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이다.''' 대나무의 생장환경과 과정이나 외양이 군자의 성품이나 절조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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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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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죽(墨竹)은 보통 윤곽선을 따로 그리지 않고, 필선 자체로 대나무의 줄기나 잎의 모양을 나타내는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리는 대나무 그림을 일컫는다. 회화에서의 대나무는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부터 인물화의 배경으로, 또는 화조화(花鳥畵)나 수석화(樹石畵)의 한 요소로 그려졌음을 볼 수 있다. 묵죽은 북송 때 사대부화(士大夫畵 : 문인화)가 대두함에 따라 하나의 독립된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북송의 문동(文同)과 소식(蘇軾)은 문인 묵죽화의 전통을 확립시켰다. 원대(元代) 이르러 묵죽은 문인화가들에 의해 더욱 발달되었다. 특히 몽골족의 지배 하에서도 불굴의 정신을 지켜온 한족(漢族) 문인화가들 사이에서 지조의 상징으로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다가 명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매화·난초·국화와 더불어 사군자의 하나로 취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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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의 묵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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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 이전의 묵죽화는 그리 많지 않다. 북송의 마지막 황제인 徽宗이 그린<竹禽圖><ref>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39936</ref>, 문동의<墨竹圖>, 소식의<竹石枯木圖> 정도를 들수 있다. <죽금도>는 화면의 초점이 대나무가 아니라 새에 맞춰있고, <죽석고목도>는 바위와 고목을 대나무와 함께 그린 것이므로. 묵죽화로써 대나무의 모습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는 문동의 <묵죽도>를 들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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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heme.npm.edu.tw/selection/Article.aspx?sNo=04009115 문동 <墨竹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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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문동의 <묵죽도>에 쓴 발문에서 이 휘어진 대나무가 문동의 살던 능양 북쪽에서 자라며, "대 꺼풀이 채 벗겨지기 전 나무좀으로 손상 받았고, 가파른 바위산에서 고생했기 때문에" 이렇게 휘어진 모양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문동이 쓴 <우죽기>에 의하면 그는 열악한 주위 환경에 영향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휘어진 대나무를 보고 '휘어졌지만 꺾이지 않는' 불굴의 정신에 감명받았다고 전한다. 즉 곧고 강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휘어지는 유연함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는 모습과 바람에 따라 움직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 군자상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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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의 묵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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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igitalarchive.npm.gov.tw/Collection/Detail/1274?dep=P 오진<묵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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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이나 화려한 묘사는 없지만, 강인한 필선과 생동감 있는 잎의 흐름으로 강한 생명력과 내면의 기개(군자의 절개)를 드러낸다. 휘어진 모습은 역경 속에서 꺾이지 않고 유연하게 견디는 군자의 자세를 의미한다. 단순한 선과 공간은 절제와 청렴경백함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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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 <修篁樹石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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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2.ltfc.net/view/SUHA/666502513a4f472467392e6d 이간<수황수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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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으면서도 잎이 무성하다. 이는 겸손하면서도 덕이 충만한 군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속이 빈 것이 도를 체득한 것이라는 유교적 가치관을 담고 있다. 무성한 잎의 생명력은 군자가 끊임없이 수양하고 발전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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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의 묵죽화==
  
아래는 연구 예시입니다.
 
  
==남종화:조맹부==
 
  
조맹부(趙孟頫, 1254~1322)는 중국 원나라 때의 화가, 서예가이다. 자(字)는 자앙(子昂), 호(號)는 송설(松雪), 별호(別號)는 구파(鷗波), 수정궁도인(水精宮道人) 등이며, 오흥(吳興, 지금의 절강성 호주) 사람이다. 송태조 조광윤의 11세손으로, 원대에 벼슬하며 문인화의 전통을 부흥시킨 인물이다. 아래 그림은 조맹부의 '작화추색도(鵲華秋色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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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pm.org.cn/collection/paint/231514.html 하창 <묵죽도>]
  
===작화추색도===
 
[[파일:KakaoTalk_20250416_010641532.jpg]]
 
[https://chineseiconography.org/items/cit_O1466299 '작화추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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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스크린샷_2025-04-17_154330.png|200픽셀]]
  
'작화추색도'는 작산과 화부주산의 가을 풍경 그림이란 뜻으로 조맹부가 고향의 노학자 주밀(周密, 1232∼1298)에게 선물한 그림이다. 주밀 집안은 대대로 제남(濟南, 산동 일대) 땅에 살다 강남 오흥으로 내려왔다. 주밀은 오흥에서 태어났지만, 북방의 제남을 자신의 뿌리라 생각하고 그리워했다. 하지만 한 번도 제남에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를 위해 조맹부는 그곳 관리로 근무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이 그림을 그려주었다. 조맹부 미학의 핵심은 '고의(古意)'이다. 망국 남송의 사실적인 미학을 극복하여, 남송 이전인 북송, 당의 예술정신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작화추색도'는 이러한 의미를 담아낸 그림이다. 주밀이 제남을 그리워한 것은 단지 조상의 땅이어서가 아니라 그곳이 북송의 문학이 꽃핀 곳이기 때문이었다. 조맹부가 이 그림을 선물한 것은 미학적 의미 표시를 담아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림의 중앙에는 매우 큰 크기의 나무들이 있다. 왼쪽 산인 직산은 지평선 상에서 화부주산보다 뒤에 있지만 가까워 보인다. 직산 쪽은 원근법이 거의 무시된 평면적 화면이며, 화부주산 쪽은 원근감이 뚜렸하다. 직산 쪽은 삶의 현장을 드러내는 풍속화로 계절, 집, 사람과 노동이 드러나며 정감이 느껴진다. 반대로 화부주산 쪽은 깊은 원근을 이루는 아득한 허공으로 펼쳐진 산수화이다. 색채도 단조롭고 황량한 풍경은 이곳이 정신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직산이 삶의 풍경을 담은 청록산수라면, 화부주산은 정신의 기운을 담은 수묵산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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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의지와 굳건함을 강조하는 다른 묵죽화와는 차별화된다. 부드럽고 유려한 느낌의 대나무는 외부와의 조화와 절제, 균형, 유연함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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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나라 사람들의 인물화는 당나라 사람들의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나는 당나라 사람의 것을 배우려고 하며, 지혜와 노력을 다하여 송나라의 필묵적 요소를 제거하려고 한다. " (주석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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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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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인들이 그림에 담았던 가치관(청렴, 절개, 고결함 등)을 현대의 관람자가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고전 회화를 단순한 미술 작품이 아닌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로 인식할 수 있으며, 대나무의 속성은 유교적 이념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에, 회화를 통해 당대의 지식인의 자기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 특히 군자상을 담은 대나무 그림은 문인의 자아 형상화이자, 시대에 대한 응답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 많은 작품을 찾아보고 어떤 시대에는 어떤 인간상을 담아내려고 했는지를 확인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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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의 부분 || 특성 || 군자의 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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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 || 굳건함 || 덕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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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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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은숙. (2009). 송대 ‘대나무’ 도상의 상징에 대한 고찰 - 「聲畵集」의 ‘대나무’ 제화시를 중심으로. 동양고전연구, 35, 47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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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연희. (2012). 趙孟頫의 墨竹− 원나라 관료사회에서의 意味. 온지논총, 33, 18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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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미. "공감각 체현을 이용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2014.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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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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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선,〈오진의 묵죽도에 대한 형식 및 상징성 연구>, 회화사논총,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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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4일 (목) 10:05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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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의 상징성: 대나무에 드러나는 군자상


작성자: 박지민





목차

Contents


연구 목적과 배경 연구 대상과 수집방법 연구 결과의 효용과 의미 참고한 자료의 목록



연구 목적과 배경



중국 회화에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대나무에 대해서 조사해 보고자 한다. 대나무는 예로부터 군자의 덕목을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로 절개, 청렴, 꺾이지 않는 정신을 나타내며 문인들의 정신적 자화상으로도 그려졌다. 대나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그 의미를 군자상, 인간상을 중심으로 조사하는 것이 목적이며, 중국 대나무 화풍의 변천사, 주요 화가의 작품 소개, 대나무 표현 기법, 대나무의 상징을 알아보고자 한다.


연구 대상과 수집 방법



연구 대상은 대나무를 주제로 한 그림이며 대나무를 중심으로 그린 그림으로 범위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시기는 제한을 두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수집 방법은 CIT를 우선적으로 활용하고, DBpia 논문을 통해 내용을 조사하겠습니다.

대나무

대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줄기와 잎을 간직하는데다 줄기에 규칙적인 마디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식물이며, 그 재료는 아시아에서 일상생활 용품으로도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약용이나 식용 등으로도 즐겨 쓰여 인간의 일상사와 밀접한관련을 맺어왔다. 대나무가 가진 상징성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동아시의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이다. 대나무의 생장환경과 과정이나 외양이 군자의 성품이나 절조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묵죽화

묵죽(墨竹)은 보통 윤곽선을 따로 그리지 않고, 필선 자체로 대나무의 줄기나 잎의 모양을 나타내는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리는 대나무 그림을 일컫는다. 회화에서의 대나무는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부터 인물화의 배경으로, 또는 화조화(花鳥畵)나 수석화(樹石畵)의 한 요소로 그려졌음을 볼 수 있다. 묵죽은 북송 때 사대부화(士大夫畵 : 문인화)가 대두함에 따라 하나의 독립된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북송의 문동(文同)과 소식(蘇軾)은 문인 묵죽화의 전통을 확립시켰다. 원대(元代) 이르러 묵죽은 문인화가들에 의해 더욱 발달되었다. 특히 몽골족의 지배 하에서도 불굴의 정신을 지켜온 한족(漢族) 문인화가들 사이에서 지조의 상징으로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다가 명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매화·난초·국화와 더불어 사군자의 하나로 취급되었다.

송대의 묵죽화

원대 이전의 묵죽화는 그리 많지 않다. 북송의 마지막 황제인 徽宗이 그린<竹禽圖>[1], 문동의<墨竹圖>, 소식의<竹石枯木圖> 정도를 들수 있다. <죽금도>는 화면의 초점이 대나무가 아니라 새에 맞춰있고, <죽석고목도>는 바위와 고목을 대나무와 함께 그린 것이므로. 묵죽화로써 대나무의 모습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는 문동의 <묵죽도>를 들수있다.

문동 <墨竹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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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문동의 <묵죽도>에 쓴 발문에서 이 휘어진 대나무가 문동의 살던 능양 북쪽에서 자라며, "대 꺼풀이 채 벗겨지기 전 나무좀으로 손상 받았고, 가파른 바위산에서 고생했기 때문에" 이렇게 휘어진 모양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문동이 쓴 <우죽기>에 의하면 그는 열악한 주위 환경에 영향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휘어진 대나무를 보고 '휘어졌지만 꺾이지 않는' 불굴의 정신에 감명받았다고 전한다. 즉 곧고 강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휘어지는 유연함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는 모습과 바람에 따라 움직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 군자상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원대의 묵죽화

오진<묵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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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이나 화려한 묘사는 없지만, 강인한 필선과 생동감 있는 잎의 흐름으로 강한 생명력과 내면의 기개(군자의 절개)를 드러낸다. 휘어진 모습은 역경 속에서 꺾이지 않고 유연하게 견디는 군자의 자세를 의미한다. 단순한 선과 공간은 절제와 청렴경백함을 드러낸다.

이간 <修篁樹石圖>

이간<수황수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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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으면서도 잎이 무성하다. 이는 겸손하면서도 덕이 충만한 군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속이 빈 것이 도를 체득한 것이라는 유교적 가치관을 담고 있다. 무성한 잎의 생명력은 군자가 끊임없이 수양하고 발전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명대의 묵죽화

하창 <묵죽도>


스크린샷 2025-04-17 154330.png


강한 의지와 굳건함을 강조하는 다른 묵죽화와는 차별화된다. 부드럽고 유려한 느낌의 대나무는 외부와의 조화와 절제, 균형, 유연함을 나타내고 있다.







연구 결과의 효용과 의미



옛 문인들이 그림에 담았던 가치관(청렴, 절개, 고결함 등)을 현대의 관람자가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고전 회화를 단순한 미술 작품이 아닌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로 인식할 수 있으며, 대나무의 속성은 유교적 이념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에, 회화를 통해 당대의 지식인의 자기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 특히 군자상을 담은 대나무 그림은 문인의 자아 형상화이자, 시대에 대한 응답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 많은 작품을 찾아보고 어떤 시대에는 어떤 인간상을 담아내려고 했는지를 확인해 보고자 한다.


대나무의 부분 특성 군자의 자질
뿌리 굳건함 덕 세우기
천성 반듯함 몸 세우기
도 체득
마디 곧음 뜻 세우기






참고한 자료의 목록



- 서은숙. (2009). 송대 ‘대나무’ 도상의 상징에 대한 고찰 - 「聲畵集」의 ‘대나무’ 제화시를 중심으로. 동양고전연구, 35, 471-498.


- 고연희. (2012). 趙孟頫의 墨竹− 원나라 관료사회에서의 意味. 온지논총, 33, 185-214.


- 김영미. "공감각 체현을 이용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2014. 서울


- [묵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박영선,〈오진의 묵죽도에 대한 형식 및 상징성 연구>, 회화사논총, 2021.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