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효경스님(曉暻, 1946生, 비구니)

biguni
이병두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4월 16일 (화) 22:18 판 (수행과 포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정의

효경스님은 대전지역 비구니들을 위한 비구니청림회 창립, 대전 시민을 위한 문화회관 건립, 육군 훈련소 훈련병을 위한 수계법회 등 시대에 맞는 리더십과 포교원력을 실천하는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46 충남 서천 출생
1966 종안(宗岸)스님을 은사로 수덕사 견성암에서 출가
1966 석암(昔巖)스님[1]을 계사로 마곡사[2]에서 사미니계 수계
1974 석암(昔巖)스님[3]을 계사로 범어사[4]에서 비구니계 수계
1974-1980 제방선원에서 안거
1980 대전 청화사 중창, 주지 취임
1982年~ 현재까지 매년 청화사 장학금 수여
1986年 창립 발기인으로 대전비구니청림회(大田比丘尼靑林會) 창립
1987年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 자격 수료
2001年~2005年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총동창회 자문위원 역임
2000年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총동림동문회 제4~5대 상임이사 역임
2003年~ 대전 법동종합사회복지관 운영위원
2008~2011年 제9대 청림회장(靑林會長)
2009年 충남대학교병원 법당 포교법사
2011年 논산훈련소 연무사(鍊武寺) 대작불사 동참 군종포교 감사장 수장
2011年 포교 및 장학사업 활동으로 총무원장 표창장 수상
2014年~ 제11대 청림회장 겸 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대전비구니청림회(大韓佛敎曹溪宗 大田比丘尼靑林會) 대표이사
2015~2019년 제11대 전국비구니회 수석부회장
2016년 11월 제1회 세계불교걸출비구니상 수상 [중화불교비구니협진회(中華佛敎比丘尼協進會)]
2020~2023년 제12대 전국비구니회 자문위원 역임
2023년 대한불교조계종 명사(明師) 법계 추대
문중 육화문중(六和)
수계제자 심원(尋源), 상현(尙玄), 상진(尙眞), 상오(尙悟), 상범(尙梵), 권우(權祐)
  • 자료제공: 심원스님(2024.3.14.)

활동 및 공헌

출가

효경(曉暻)스님은 1946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했다. 1966년에 수덕사 견성암에서 종안(宗岸)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1966년 마곡사에서 석암스님(昔岩)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1980년까지 제방 선원에서 안거하다가 그해 대전 청화사를 중창하고 주지에 취임했다.

대전비구니청림회(大田比丘尼靑林會)

2016년 10월 21일은 공교롭게도 경찰의 날이었다. 매년 돌아오는 기념일은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효경(曉暻)스님에게 10월 21일은 언제나 '운명의 날'이다. 장대한 포교 원력의 기억이 오롯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86년 이날, 대전시민회관에 운집한 2000여 사부대중이 만들어낸 장관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당신이 주지로 일하던 대전 청화사의 신행단체인 지장회 창립 10주년 기념법회였다. ‘한밭[1]’의 교세는 지금보다도 훨씬 열악했다. 스님은 “아마도 대전충남지역 최초의 대중법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토록 불교를 사랑하는 신도들을 위해서라도 스님들이 힘을 내야 했다”고 술회했다. 그날 불자들이 보여준 저력은 대전비구니청림회를 문 열게 만든 힘이었다.
효경스님은 1986년 창립발기인으로 대전비구니청림회를 창립했다. 1986년 연말에 발족한 대전비구니청림회는 이름 그대로 대전지역에서 전법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모임이다. 현재 시내 20개 비구니 사찰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창립멤버였던 효경스님은 9대 회장을 거쳐 지금 11대 회장으로 일하는 중이다. 회장이 아니더라도 30년간 단 한 번도 소임을 놓은 적이 없다. 조계종 전국비구니회를 제외하면 지방에선 가장 큰 규모의 비구니 승가단체라고 말할 수 있다. 2008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며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청림회(靑林會). 눈 푸른 수행자들의 결집이다.
청림회는 경사(慶事)를 눈앞에 뒀다. ‘대전비구니청림회 문화회관’이 오는 11월9일 오전10시 개원한다. 낙성법회에는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을 증명으로 1000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할 예정이다. 대지 1220m²에 연면적 1796m²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 지하 1층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지상 1층은 나눔과 베풂의 복지 공간, 2층은 문화교육관, 3층은 천불전으로 꾸며진다. 6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법당이다. 회장인 효경스님은 “여러 회원 스님들의 십시일반 모연으로 창립 30년만에 자랑스러운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며 “대전충남의 교세를 비약적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전불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불자뿐만 아니라 대전 시민들이 찾는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로 회장 소임을 마치고 은퇴를 결심한 스님이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무엇보다 청림회의 대표적인 전법활동은 바로 ‘성도절 대법회’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음력 2월15일 2000여 명의 사부대중과 더불어 ‘부처님을 본받아 우리 모두 부처가 되자’고 서원한다. 30년 전 대전시민회관에서 맛본 감동을 불제자들에게 널리 회향하자는 취지에서 1987년부터 해마다 이어오고 있다. 내년이면 30주년을 맞는다. 효경스님은 “대전지역의 성도절 대법회는 1986년 창립한 대전비구니청림회와 그 역사를 함께 해 왔으며, 29회를 맞이한 지금은 명실상부하게 대전 불자들의 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고 뿌듯해 했다.

수행과 포교

깨달음은 불교의 핵심이다. 부처님은 정각(正覺)을 얻음으로써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 등극했다. 깨달음에 기반을 두지 않은 보살행은 겉치레나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게 효경스님의 지론이다. “부처님은 연기(緣起)를 발견함으로써 대자유를 획득했습니다. ‘모든 존재는 시간과 상황이 변함에 따라 함께 변하고(제행무상)’ ‘만물은 홀로 살 수 없으며 상호 간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제법무아)’는 것을 깨우친 분이지요. 결국 연기적인 삶이란 자연의 질서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삶이며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삶입니다.”
깨달음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일체중생의 행복이다. 효경스님이 성도절 대법회를 중시하는 까닭도 단순히 부처님을 향한 숭배를 넘어 불자들에게 이웃 전체를 향한 겸애(兼愛)를 일깨우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깨달아야만 진정한 자비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게 본래 없음을 알아야 서로 화합하고 용서할 수 있는 법입니다. 삶의 진실에 대한 통찰이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을 세상과 나누는 것이 보살도입니다.”
1년에 10만 배를 발원하고 하루를 108배로 시작하는 스님이다.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매년 수계법회를 열며 나라를 지키는 젊은 청년들의 든든한 어머니로 자리했다. 1982년부터 지역의 고학생들에게 장학금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스님의 이러한 진심은 신도들에게 통했던 모양이다. 2011년 불교합창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한 청림회합창단은 상금 500만원 전액을 당시 대홍수를 당한 태국 국민들을 위한 구호기금으로 쾌척했다.
2016년은 여러 모로 뜻 깊다. 비구니청림회 창립 30주년이자 효경스님 개인에겐 출가 50주년이 되는 해다. 20대 초반 비구니 선원으로 이름이 높은 수덕사 견성암에서 머리를 깎았다. “뭐 하러 시집을 와서 남편 뒷바라지하고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당하며 고생을 자청하느냐고 올케들을 놀렸던”, 태생이 운수납자(雲水衲子)였다. 오로지 참선으로만 일관하던 도중 우연한 인연으로 대전에 터를 잡았다. 물론 수행이든 전법이든 스님에겐 다른 일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든 “‘하루 일하지 않았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와 <초발심자경문>의 말씀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요즈음 당신의 근황이 어쩌면 더없는 깨달음이다.
효경스님은 며칠 뒤 대만을 방문한다. 대만의 비구니 스님들이 운영하는 사찰연합체인 대만비구니협진회가 2016년 11월19일 수여하는 걸출여성상을 받으러 가는 길이다. 조계종 전국비구니회 회장 육문스님, 어린이포교의 선두주자로 유명한 화성 신흥사 주지 성일스님, 지역사회 복지에 일가견을 이룬 평택 명법사 회주 화정스님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해외에서도 불교를 위해 애쓴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다. 청림회 문화회관 천불전에 모신 불상 안에는 효경스님이 매일 108배를 하며 한 글자씩 썼던 ‘옴’ 문자가 수북하게 복장됐다. 초발심자경문을 가슴에 담은 이유는 늘 처음처럼 살겠다는 다짐이다. 스님의 일생 조각조각은 출가하던 날의 마음과 똑같다.
대전비구니청림회 문화회관은 관광지로 명성이 자자한 보문산 자락에 위치했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인데 경관이 수려하다. 효경스님의 법호는 평산(平山). “출가수행자는 너무 높아서는 안 되며 매사를 원만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경책이 담겼다. 아만(我慢)으로 우쭐대기 십상인 탓이다. 자기만이 옳다는 신념은 모두에게 상처를 입힌다. 청화사 주지까지 상좌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말 그대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누구든 기대어 쉴 수 있는‘평산’으로 삶을 회향할 계획이다.

■ 효경스님은…

1980년까지 제방 선원에서 안거하다가 그해 대전 청화사를 중창하고 주지에 취임했다. 1986년 창립발기인으로 대전비구니청림회를 창립했다. 청림회 제9대 회장을 거쳐 금년 말까지 11대 회장으로 활동한다. 2011년 포교 및 장학사업으로 조계종 총무원장 표창장을 받았다. 현재 전국비구니회 수석부회장이다.

[불교신문3244호/2016년10월29일자]

출처 : 불교신문 [5]

청화사(淸華寺) 연혁

청화사1.jpg
청화사2.jpg
청화사3.jpg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334 소재

본 사찰은 한국불교태고종 박선종 스님께서 현재 선방에 모신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1936년 4월 창건되었다. 당시 지주이던 정일덕씨는 후손이 없어 칠성생남기도 끝에 득남하여 임시로 사용하던 대지 157평의 요사를 시주받아 1937년 6월 韓國佛敎太古宗 大興寺로 등록하였다. 당시 미등기 상태였던 사찰은 시주자의 후손에 의해 공매처분 받게 된 것을 현 주지 효경스님과 신도대표 우법계성 외 여러 신도들의 원력으로 1980년 대전지방법원에서 경락을 받아서 대한불교 조계종 청화사로 개칭하였다. 이후 주변의 땅과 건물을 매입하여 사찰을 증축하였으며 1993년에는 故 손기철 거사의 시주와 청화사 신도님들의 원력으로 대웅전과 요사채를 준공하였다. 그후에도 꾸준히 만중생의 복전이 될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시민선방을 개설하는 등 도심속 청정 포교도량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 자료제공: 심원스님(2024.3.14.)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효경(曉暻)스님 본항목 효경스님(曉暻, 1946~) 曉暻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효경스님(曉暻,_1946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효경(曉暻)스님 육화문중(六和) ~의 일원이다
효경(曉暻)스님 종안(宗岸)스님 ~의 수계제자이다
효경(曉暻)스님 수덕사 견성암 ~에서 출가하다
효경(曉暻)스님 석암스님(昔岩)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비구니계
효경(曉暻)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으)로부터 상을 받다 총무원장 표창장
효경(曉暻)스님 중화불교비구니협진회(中華佛敎比丘尼協進會,대만) ~(으)로부터 상을 받다 제1회 세계불교걸출비구니상
효경(曉暻)스님 전국비구니회 ~을(를) 역임하다 수석부회장(제11대)
효경(曉暻)스님 명사품계(明師品階) ~을(를)품수하다

한국 비구니 인명사전 데이터 아카이브로 가기

지도

  • 청화사 :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334



주석

  1. 대전(大田)의 순수한 우리말로서 대전시를 의미함


다른 비구니 스님


대한민국 주요 비구니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