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견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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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 불교사에 최초의 비구니 선원으로 개원한 수덕사 견성암은 1900년경 정혜사 동쪽에 초가집으로 지어져 5~6명의 비구니 납자들이 모여 정진했으나, 전국에서 선원 개원 소식을 듣고 선객(禪客)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930년 조실 만공스님의 뜻에 따라 비구니 도흡스님이 증축한 이래 1965년 벽초스님에 의해 현재의 위치인 수덕사 서편 산중턱으로 자리를 옮겨서 2층 석조건물 법당과 요사채인 동선당, 서 선당 관음전을 증축하여 전국 최초이자 최고의 비구니 선원으로 면모를 갖추었다.

선방은 백여 명의 남자들이 수도 정진하고 있으며, 초심납자부터 중진 대덕 노스님에 이르기까지 정진과 화합을 원칙으로 부처님의 근본사상과 불가의 전통을 계승·유지하는 정진처(精進處)가 되고 있다. 그리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중의 의사에 따라서 공개적으로 대중살림을 운영하는 비구니 선원이다. 특히 견성암은 만공스님께 인가를 받으신 법희(法喜), 만성(萬性)스님과 대영, 수옥, 응민스님 등 한국 근대 불교사에 빛나는 선승들을 배출했고 또 선객으로서 이곳 선방을 거쳐 가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본당에 걸려 있는 견성암 칠근루(七斤樓) 현판과 1928년에 작성한 견성암(見性庵) 방함록서(芳啣錄序)는 만공스님의 친필이며, 개화기의 여류시인 김일엽(金一葉)스님이 1930년대부터 수도 정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견성암의 옛 사진

- 금강산 마하연은 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었다. 이 사진은 당시 마하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아주 귀한 사진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92565&cid=50763&categoryId=50782
- 선복스님은 비구니 법희·일엽·만성 스님 등과 함께 만공 스님의 수법제자이다.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371
- 옛 견성암에서의 가사불사 사진은 젊은 비구니스님들이 가사를 만들고 있고 뒤에 노스님들께서 증명을 하고 있다.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