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성덕스님(盛德, 1942生, 비구니)

biguni
이병두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4월 11일 (목) 09:43 판 (릴레이션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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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성덕(盛德)스님은 정화운동에 참가하고 마곡사 영은암을 중창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42 충남 공주 출생
1956 마곡사 영은암에서 일휴(一休)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0 마곡사에서 적음(寂音)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봉선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70년대 영은암 중창
2004년 마곡사 영은암 주지
문중 육화(六和)문중
수행지침 신심(信心)을 갖고 사는 것이 승(僧)이다.
수계제자 지오(智悟)·지관(智寬)·지용(智涌)·지후(智厚)

활동 및 공헌

출가

<마곡사 영은암>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P447
[마곡사 영은암 전경]
사진출처: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cheongbong99/221670584700

성덕(盛德)스님은 1942년 1월 15일 아버지 이근하와 어머니 윤정숙 사이의 4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의이며, 이름은 이영자이다. 스님의 아버지는 3대 독자셨는데 할머니는 아들을 얻기 위해 무당의 말에 따라 이사도 많이 다니셨다고 한다.

스님은 태어났을 때부터 유난히 잠이 많아서 땅에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스님을 보고 할머니는 아무래도 명이 짧아 일찍 죽을 것 같다며 걱정을 많이 하셨다. 스님은 지금도 자신이 출가를 했기 때문에 오래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스님이 11세 되던 해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3세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14세 되던 해 출가를 결심하였다. 아버지가 스님을 절까지 데려다주셨는데 거기에는 절박한 사연이 있다. 당시는 6·25전쟁 중이라 피난민들이 많았다. 피난민 한 사람이 아버지를 꾀어서 같이 장사를 하자고 했다. 아버지는 그 사람의 말만 믿고 장사를 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논과 소들을 다 팔아 그 사람을 따라갔다. 그런데 중간에 그 사람이 돈을 갖고 도망을 가버렸다. 그 일로 인하여 스님 가족은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었고 살 길이 막막해졌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스님을 마곡사에 데려 갔고 스님은 마곡사 영은암에서 일휴(一休)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생활

정화 전 마곡사에는 건장한 대처승 40~50여 명이 있었다. 이승만 정권 시절 정화운동이 벌어져 젊은 스님네들이 데모하러 나가고 여기저기로 이사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절에서 싹 빠져나가고 몸이 허약하신 노스님 한 분만 남게 되었다. 노스님은 젊어서부터 몸이 약하셨고, 그 때문에 절에 오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셨다. 더운 여름에도 따뜻한 물로 발을 닦고 항상 밥도 뜨겁게 해서 드시고 따뜻한 물만 드셨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주무실 때는 솜이불을 덥고 주무실 정도로 몸이 약하셨다.

당시 마곡사에 계셨던 자명 노스님은 상좌를 두지 못하고 계셨다. 그래서 어린 성덕스님이 노스님을 따라다니며 시봉을 하였다. 성덕스님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노스님의 상좌가 된 것인데, 당시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무조건 노스님 가는 곳을 따라다녔을 뿐이었다. 성덕스님이 절에 왔을 때에는 수덕사 스님을 비롯해 피난 나오신 노스님들이 많았었다. 노스님마다 각각 법당을 하나씩 놓고 자신들의 신도와 밭도 따로따로 있었다.

당시 본방 대중들만 해도 30~40명 정도 되었는데 전쟁 직후라 피난 온 스님들까지 합쳐서 70~80명이 넘었다. 그렇지만 형편이 매우 어려워 먹을 것이 없어 모두 굶주려가면서 생활을 해야만 했다. 마곡사 아래에는 밭이 있었는데 절에 계시던 스님들이 손수 경작하였다. 성덕스님도 그곳 보리밭의 김을 매고 보리를 베고, 대중들과 앉아서 보리이삭을 하나하나 땄다. 당시엔 요즘같이 비료가 흔치 않아서 사람의 인분으로 비료를 대신하였다. 이런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했기에 농사를 짓는 것이 힘이 들었고, 제대로 된 먹을거리 하나 없이 모든 것이 궁색하기만 했다.

대처승을 내보내기 위한 정화운동이 한창일 때에는 성덕스님도 동참하였다. 대중들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할 때 3일 동안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스님은 큰 절을 대처승들이 장악하고, 암자에 사는 스님들은 농사지어서 자비량으로 근근이 사는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마곡사에서 대처승들이 나가고, 일연 노스님이 와서 살았어야 했는데 염불을 잘 하니 재받이만 하러 다니셨다. 비구니스님들이 재만 있으면 일연 노스님을 청하는 바람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 다니셨다. 주지스님인 노스님이 일연스님의 자리를 잘 맡아 절에 머물게 해야 했는데, 마음이 약해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셨다.

성덕스님은 19세까지 행자로 지냈다. 행자 때 마곡사 옆에 초가가 있었는데 노스님이 아는 어떤 분이 그곳에 기거하셨다. 성덕스님은 그 분을 위하여 뒷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군불을 지펴드리고 청소를 하는 한편, 마곡사 선방에서 소임을 사느라 하루하루가 힘에 부쳤다. 스님은 쓰러져 가는 마곡사를 허물고 일부 재목을 구입할 돈이 없어서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직접 자재를 마련했고, 원주에 사시는 종덕스님이 불사를 같이 하며 개축을 하였다.

그해 1월 불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 자명 노스님께서 정월 보름날 마곡사에 동안거를 해제하러 가서 백년암을 맡게 되셨다. 그래서 성덕스님도 백년암으로 이사를 갔는데,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서 절 아래 마을을 집집마다 다니면서 된장, 간장, 김치 등을 얻어오기도 하였다. 성덕스님은 백년암에서 노스님을 시봉하는 한편 마곡사에서 일 년 동안 특별 채공(별공)을 살면서 불사를 하였다. 백년암과 마곡사를 번갈아 살면서 겪었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힘든 삶을 살던 스님은 9월 27일 회향을 하였다.

영은암 중창

영은암은 자장율사가 터를 잡고 창건한 곳으로 그곳에 직접 기거하며 마곡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27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성덕스님은 그동안 다 쓰러져 비가 새는 절을 개축하는 등 많은 일을 해냈다. 먹을 것조차 변변치 않던 시절에 불사를 해야 하는지라 스님은 천일기도를 시작하였다. 기도 도중 어떤 스님이 마곡사의 재정을 보시고 400만원을 선뜻 시주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스님은 너무나 감격해 나무 뒤에 숨어서 울었다. 그때 마음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만성스님이 계실 때 대성암 등에서 안거를 성만하고, 서산 개심사에서 혜암 큰스님을 모시고 공부하기도 했던 스님은 가람을 수호하여 폐사를 일으켜 세우며 불사에 전념했다. ‘신심을 갖고 사는 것이 곧 덕’이라는 생활신조로 항상 염불을 하는 스님은 요즘의 젊은 스님들을 보면 몇 가지 우려가 든다고 한다. “스님이 되어도 스님 노릇에 무게를 두지 않고 세속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사는 스님들이 있습니다. 수행자는 부처님 예경이 첫째이고, 둘째로 신심이 있어야 하는데 옛날만큼 신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계를 받았으면 전부는 지키지 못하더라도 부처님의 법을 어느 정도 존중하고 따라야 합니다.” 예식을 똑바로 해서 부처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스님은 절에서 아이들을 키운 적도 있었다. 아이들의 뒷받침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잘 자라줘서 고마울 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계제자

성덕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오(智悟)·지관(智寬)·지용(智涌)·지후(智厚)스님 등이 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성덕(盛德)스님 본항목 성덕스님(盛德, 1942~) 盛德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성덕스님(盛德,_1942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성덕(盛德)스님 육화문중(六和) ~의 일원이다
성덕(盛德)스님 일휴스님(一休) ~의 수계제자이다
성덕(盛德)스님 마곡사 영은암 ~에서 출가하다
성덕(盛德)스님 적음스님(寂音)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성덕(盛德)스님 석암스님(昔岩)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성덕(盛德)스님 마곡사 영은암 ~을(를) 중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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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마곡사 영은암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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