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정관스님(靜觀, 1945生, 비구니)

biguni
Ehjkkims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7월 29일 (금) 18:25 판 (릴레이션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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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관(靜觀)스님은 평생을 노인복지에 헌신하여 ‘공주의 마더테레사’라는 찬사를 받은 한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45 경북 칠곡 출생.
1967 효성여자대학교 졸업, 서산 개심사에서 경희(慶喜)스님을 은사로 출가, 동화사에서 행원(行願)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71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83~1985 서울 기원정사에서 법사 포교활동
1986 일본 오사카 연화사 포교당 설립
1989 일본 경도불교대학 졸업
1991 일본 경도불교대학원 졸업
1993 금강사회복지관 관장 취임
1995 일본 경도용곡대학 박사과정 졸업
2000 고려대학교 경영정보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2001 금강사회복지관 관장 퇴임
2004 노인요양시설 금강원 원장
문중 봉래(蓬萊)문중
수행지침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요로 삼아 논두렁을 베고 누워 생을 마치더라도 미소를 머금는 마음을 가지자.
상훈 전국여성단체협의회로부터 용신봉사상 수상(1999) 외 다수
특기 피아노
수계제자 법진(法眞)

활동 및 공헌

출가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386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389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390
사진출처:충청신문http://www.dailycc.net/news/articleView.html?idxno=432051

정관(靜觀)스님은 1945년 3월 11일 경북 칠곡군에서 2남 1녀 중 외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며, 이름은 박애자이다. 스님의 아버지는 섬유사업을 했는데 꽤 성공을 거두어 가정이 화목하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하였으므로 스님은 아무런 불편 없이 대학까지 다니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이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았다.

대학 4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차츰 기울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망하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런데 평소에 다니던 대구 서봉사에서 아버지의 49재를 올리는 동안 스님은 서봉사 스님들과 가까워지면서 불문에 눈을 뜨고 생사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스님은 서서히 출가의 뜻을 품게 되었다.

1967년 2월 대구 효성대학교 가정학과를 졸업한 스님은 그해 3월에 서산 개심사에서 경희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처음에 스님이 출가의 뜻을 밝히자 어머니는 완강히 반대하셨다. 당시 집안 사정도 스님이 꼭 있어야만 할 형편이었다. 그렇지만 스님은 졸업 때 선물로 받은 『팔만대장경』을 밤새워 읽고 자신의 목숨이 풀 한 포기, 모기나 파리 한 마리 같이 덧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처님의 대광명으로 진혜명(眞慧明)을 깨우치겠다는 무쇠와 같은 의지를 말릴 수 없었다. 이에 어머니도 어떠한 만류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일본 유학

출가 후 스님은 백여 명의 대중이 운집한 석남사 삼동 결제 때 혼자서 공양주를 살았다. 이어 1983년 봄부터는 서울 기원정사에 머무르며 8년간 법사로서 포교에 전념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갈 인연이 생겨 42세 되던 1986년 7월 일본 오사카에 연화사 포교당을 설립하였다. 그런 한편 어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워 학문에 발을 내딛고 불교학을 수학하였다. 마흔이 넘은 만학의 학업은 뼈를 깎는 인고의 정진이 없으면 결실을 거두기가 지난한 일이었다.

스님은 일본 유학시절에 한국인촌에 살면서 비자가 만료되어 불안과 걱정 속에 사는 한국인의 손발이 되고 고락을 풀어주는 일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또한 일본인과 결혼은 했지만 일본어가 서툴러 가정법원에서 답변을 제대로 못하는 이들의 대변인으로 그들의 힘이 되어준 적도 있다.

일본 경도불교대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한국 공주에 금강사회복지관을 운영을 겸하다

스님은 1989년 3월 14일 일본 경도불교대학을 수료하였고, 1991년 3월 14일 경도불교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 후 박사과정에서 유식과 정토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던 1993년 9월, 동학사 강원에서 복지관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공주시에서 복지관 운영권을 넘겨받은 사회복지법인 자비원이 동학사로 위탁 운영을 의뢰하자 동학사에서 정관스님에게 부탁을 해온 것이다. 이에 1993년 9월 복지관을 ‘금강사회복지관’으로 명명하고 복지사업에 첫 발을 디뎠고, 이렇게 시작한 일이 햇수로 3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스님은 문득문득 ‘수행 중 일등 수행이 사회복지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공사다망한 중에도 스님은 틈틈이 공부를 계속하여 박사논문도 제출했다고 한다.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전해주고 위급한 사람을 살리다

복지관 운영을 하면서 스님은 굳이 불교를 내세우지 않았다. 복지관을 찾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는 스님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하면서 저절로 호감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포교라고 생각해 왔다고 한다. 언젠가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기 위해 스님이 나갔을 때 한 할머니가 입에 거품을 문 채 혼절해 있어 소중한 생명을 구한 적도 있다고 한다. 스님은 직접 장을 보고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해 왔다.

치매노인을 돌보다

노인을 위한 활동을 많이 하면서 스님은 언제부터인가 어린이보다 노인들을 더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 스님은 치매 노인을 위한 복지사업에 큰 애정을 쏟고 있다. 이들 치매노인들에 대해 기울이는 스님의 사랑은 이곳을 방문했던 봉사자들의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도 칭찬이 자자하다.

노인을 위한 ‘정서서비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도시락 서비스와 더불어 동학사 신행회의 ‘정서서비스’도 금강사회복지관만의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정서서비스란 매달 한 번씩 동학사 학인스님들이 2인 1조가 되어 무의탁 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직접 찾아가 말벗이 되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스님들은 말 벗뿐만 아니라 청소, 빨래, 목욕 등 가사 일도 해드리고 있다. 복지관의 사회복지사 주선옥 씨의 말을 빌리면 ‘동학사 스님들이 오면 노인들의 안색이 환해 질 정도로 좋아하신다.’고 한다. 그 이유는 봉사하러 온 스님들의 단정한 모습과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일반 자원 봉사자들과는 사뭇 다르고 그 손길에서 정성과 자비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사회복지관에 지급하던 정부 보조금은 삭감 되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각 복지관은 작게나마 수익 사업을 벌이기도 하고, 보조금 외에 별도로 예산이 책정된 복지 프로그램을 따내려고 경쟁하기도 한다. 도시락 서비스의 경우만 하더라도 정부에서 책정하는 예산만으로는 넉넉하게 도시락을 마련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정관 스님은 위탁 운영을 맡고 있는 동학사의 후원금, 기타 몇몇 사찰과 개인 후원자가 보내주는 쌀을 비롯해 이름을 밝히지 않는 후원자들의 정성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의 끊임없는 헌신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새로운 복지서비스를 끊임없이 개발하다

여러 해가 지난 오늘날 스님의 복지관은 대상자뿐만 아니라 단위사업이 많이 늘어났다. 그 종류를 들자면 도시락 배달 서비스, 재가 복지 반찬 서비스, 결식아동 반찬 서비스, 노인 단기 보호 사업, 노인 재가 파견사업, 가정폭력 상담소, 가정폭력 대피소, 공주시청 소년상담실, 청소년 공부 방, 아동 공부방 등이 있으며, 이들 사업은 하나같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외에도 어르신 나들이 목욕 서비스, 효도 관광 등을 정기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994년부터 한 달도 거르지 않고 공주교도소의 재소자를 위하여 법문과 대중공양은 물론이고 출소자를 위하여 직업 알선 등을 꾸준히 해왔다.

‘공주의 마더테레사’라는 찬사를 받고 용신봉사상을 수상하다

스님은 1999년 9월 16일 ‘용신봉사상’이라는 상을 수상하였다. 용신봉사상은 여성협의회가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이자 여성농촌운동가인 최용신(崔容信, 1909∼1935)의 뜻을 이어 1964년 제정한 것으로, 희생과 사랑의 정신으로 국가와 지역사회, 여성발전에 힘쓴 모범적인 여성에게 주는 상이다. 스님을 용신봉사상 후보로 추천한 사람들은 그 사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스님은 1993년부터 공주시 금강사회복지관 관장으로 취임하여 끊임없는 공부로 봉사 활동의 질을 높이고 지역 사회를 사랑해오신 분으로서 말보다 실천이 앞서며,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의미를 전하고 있어 단어가 모자라 칭찬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인도의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가 바로 우리 공주시에 계십니다. 스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시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활동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선행들이 널리 알려져 희망의 2000년을 준비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빛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참다운 ‘사랑으로 함께 하는 삶’으로 인생을 의 미 있게 사시는 분이며 늘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 앞에 누구라도 고개가 숙여집니다. 혼신의 정열 과 섬김의 낮은 자세로 공주시 저소득 주민을 위해 1년 365일을 한결같이 봉사하시는 금강사회복지관 관장을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큰 박수와 함께 제35회 용신봉사상 후보로 추천합니다.”

농촌 폐교를 인수하여 노인요양원을 열다

2001년 6월 30일 금강사회복지관 관장을 퇴임한 스님은 공주시 가정 봉사원 파견 센터를 운영하였다. 그런 가운데 직접 실사를 나가서 노인들의 열악한 환경과 외로운 생활 모습을 보고 새삼 많은 것을 느낀 뒤 공주시 우성면 죽당리에 있는 폐교 ‘죽당 초등분교’를 임대하여 노인요양시설인 금강원을 설립하였다. 비록 시설은 작고 열악할지 몰라도 불우한 노인들을 모셔다가 수발을 해드리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노인들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분들이라 요양 시설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따뜻한 음식과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여건만 마련한다면 문제될 게 없으리라는 스님의 생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금강원 노인들은 정성껏 지은 음식과 스님의 따뜻한 보살핌에 감사한 마음으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 10여 명의 노인을 모시고 시작한 이 일은 스님의 사비로 근근이 운영해왔으나 점차 인원이 늘어나면서 주머니 사정이 늘 여의치 않지만 2004년 현재 금강원은 노인 50여 분의 안식처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법진(法眞)스님이 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정관(靜觀)스님 본항목 정관스님(靜觀, 1945~) 靜觀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관스님(靜觀,_1945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정관(靜觀)스님 봉래(蓬萊)문중 ~의 일원이다
정관(靜觀)스님 경희(慶喜)스님 ~의 제자이다
정관(靜觀)스님 서산 개심사 ~에서 출가하다
정관(靜觀)스님 행원(行願)스님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정관(靜觀)스님 석암(昔岩)스님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정관(靜觀)스님 일본 오사카 연화사 포교당 ~을 창건하다
정관(靜觀)스님 노인요양시설 금강원 ~을 설립하다

지도

  • 노인요양 금강원(충남 공주시 우성면 죽당리 279)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