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종수스님(鍾修, 1922生, 비구니)

biguni
이병두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9월 18일 (수) 07:20 판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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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무이(無二) 종수(鍾修)스님은 일념으로 화두를 잡고 수행정진을 강조하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22 충남 예산 출생
1965 김룡사에서 성호(性浩)스님을 은사로 출가
1974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77 법주사에서 일타(日陀)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삼선암, 국일암, 관음사, 내원사 등 제방 선원에서 20안거 성만
1982 유점사 불사
1990 유점사 대웅전 불사
2004 유점사 주석
문중 삼현문중(三賢)
수행지침 수좌답게 생활하자.
생활신조 항상 부지런하고 신심을 잊지 말자.
상훈 금산지역 소녀가장들 교육지도에 대한 감사패 2회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동옥(東玉)·해공(海空)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혜원(慧元, 6)→선유(善宥, 7)→영순(永淳, 8)→성호(性浩, 9)→종수(鍾修, 10)→동옥(東玉, 11), 해공(海空, 11)

활동 및 공헌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312

출가의 계기

무이(無二) 종수(鍾修)스님은 1922년 12월 23일 충남 예산에서 아버지 김용만과 어머니 전주 이씨 이간난 사이의 3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이며, 이름은 김월례이다.

집안 어른들께서 하도 결혼하라고 등을 떠밀고 걱정하는 바람에 종수스님은 김룡사로 도망을 갔다. 처녀 때부터 스님이 되고 싶어 인천 용화사의 일요 관음법회에 참석하여 전강 큰스님, 소천 노스님께 법문을 듣고 다녔는데 혼인할 마음은 도무지 생기지 않고 법문이 너무도 좋아 오로지 스님만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스님은 1965년 김룡사에서 성호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하였다. 성호스님은 일타스님의 모친이었는데 불사 중에 돌아가셔서 종수스님과 많은 날을 같이 하지 못하였다. 열반하시기 전에 종수스님한테 “늘 공부를 많이 하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은사스님 제사를 모실 때면 은사스님과의 기억을 더듬어 보신다.

은사이신 성호(性浩)스님

성호스님은 속가에서 결혼하여 4남매를 낳고 출가한 뒤, 43명의 스님을 만드시고 돌아가셨다. 시집 식구, 친정 식구, 하인들까지 전부 스님을 만들었다. 출가 전 먼저 남편에게 스님 되시라고 절로 보냈는데 돌아오시고 말았다. 성호스님 자신이 스님이 먼저 되어야겠다고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출가를 하신 것이다.

일타 큰스님은 국민학교 다닐 때 어머니인 성호스님이 직접 데리고 가셔서 출가를 시키셨다. 일타 큰스님께서도“어머님은 다시 태어나도 아마 스님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일타 큰스님은 큰 공부를 하고 돌아가신 분이고 너무 좋으신 분이었다. 일타 큰 스님은 외국에 가서도 큰 강을 돌면서“스님 잘 됐다, 스님 잘 됐다”외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럴 만큼 스님 생활을 너무나도 좋아하셨다. 일타 큰스님의 출가 후 스님의 아버지도 출가를 하셨다. 은사스님의 상좌는 백우선원의 정성스님과 종수스님이다.

종수스님은 스님은 지금까지 자신이 선택한 길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스님이 되기 전에는 삶이 좋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스님이 되고 나니 너무나 좋았다. 스님은 1974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고, 2년 뒤인 1976년 같은 곳에서 일타 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수행

또한 해인사, 삼선암, 국일암, 관음사, 내원사 등 제방 선원에서 20안거를 성만하였다. 그리고 내원사에서는 원주 소임을 살았다.

노스님이신 연령스님

노스님이신 연령스님은 공부를 독려하며 많은 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노스님은 “바쁜데 뭐하러 시봉하느냐.”며 신경 쓰지 않도록 하셨다. 성호스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스님은 다른 많은 노스님을 은사스님처럼, 부모님처럼 여기며 지냈다.

유점암을 유점사로 중창불사

[유점사 전경]
사진출처:카카오지도https://map.kakao.com/?q=%EC%B6%A9%EB%82%A8%20%EA%B8%88%EC%82%B0%EA%B5%B0%20%EC%A7%84%EC%82%B0%EB%A9%B4%20%EB%A7%8C%EC%95%85%EB%A6%AC%20%EC%82%B0%20129&map_type=DEFAULT&map_hybrid=false&from=total

종수스님은 1982년 유점사와 인연을 맺었다. 해인사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한 노인으로부터 자신의 딸이 절을 소유하고 있는데 다 쓰러져서 뜯기게 되었으니 도와달라는 청을 받았다. 그래서 노인을 따라가 보니 조용하고 공기도 좋아 토굴처럼 여기고 혼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그때부터 이곳에서 머물러왔다.

솔림산(수림산)에 위치하고 있는 유점사는 종수스님이 처음 왔을 때에는 유점암으로 불리고 있었다. 스님이 당국에 사찰 등록을 하면서 유점사로 개명하였다.

원래 유점암을 짓고 살던 보살이 절을 지은 데에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었다. 하루는 보살이 돌아다니다 한 행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행인이 보살에게 불상을 주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불상을 받아든 보살은 집으로 돌아와 장롱 속에 넣어두고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자 보살은 남편을 위해 절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곳 금산에서 세 번째로 큰 절을 짓게 된 것이다.

스님은 공부를 하며 이곳저곳 만행을 하다가 1982년에 유점사로 왔다. 공부를 계속했어야 하는데 노보살을 만나는 바람에 유점사로 와서 주지를 살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 또한 인연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유점사가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많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마당을 넓히고 도량을 재정비했다.

스님은 1990년 대웅전 불사를 하였고, 사찰을 넓히기 위해 주변의 밭을 더 사들였다.

일념으로 화두를 잡고 수행정진

스님의 어린 시절은 일제 강점기였기 때문에 순사가 집으로 와서 놋그릇은 물론 심지어는 옷고름까지 잘라갔다. 또 정신대 공출 때문에 처녀들은 무서워서 몰래 숨어 살았다. 6·25전쟁 때에는 해인사에 있다가 부산으로 피난을 가기도 하였다.

스님이 삼선암에 있을 때였다. 일타 큰스님이 오셔서 ‘우리 모친이 다 못하고 간 공부, 스님께서 잘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이제는 해가 많이 흘렀고 공부도 많이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스님은 다음 생에는 기필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말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스님 노릇을 후회한 적이 없고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은 스님 된 것이라는 종수스님은 부모 없는 아이들을 다섯이나 기르고 교육시켜 사회의 동량으로 키워냈다.

80세를 훌쩍 넘긴 종수스님은 소천 큰스님과 전강 큰스님께서 매일 화두를 잡으라던 당부와 공부 열심히 하라던 일타 큰스님의 말씀을 항상 잊지 않고 있다. 화두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생에는 든든한 장부로 태어나 출가하기를 발원하는 스님은 젊은 사람들이 자기 능력만큼만 열심히 하면 못할 게 없고 자신을 위해 앞으로 계속 정진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후학들이 알뜰하게 살기를 권한다.

2004년 종수스님은 유점사에서 수행 정진 중이며, 수계제자로는 동옥(東玉)·해공(海空)스님이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뜨란출판사, 2007, pp.310~314.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52.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376.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종수(鍾修)스님(삼현) 본항목 종수스님(鍾修, 1922~ )(삼현) 鍾修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종수스님(鍾修,_1922生,_비구니)(삼현)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종수스님(鍾修) 삼현문중(三賢) ~의 일원이다
종수스님(鍾修) 성호스님(性浩) ~의 수계제자이다
종수스님(鍾修) 문경 김룡사 ~에서 출가하다
종수스님(鍾修) 석암스님(昔巖)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종수스님(鍾修) 일타스님(日陀)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종수스님(鍾修) 금강산 유점사 ~에서 주석하다
종수스님(鍾修) 금산 유점사 ~의 불사를 하다 대웅전 불사
종수스님(鍾修) 안거 ~을(를) 성만하다 합천 해인사 삼선암, 합천 해인사 국일암, 관음사, 양산 내원사 등

지도

  • 유점사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만악리 산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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