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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명 : 해광스님'''
 
* '''인물명 : 해광스님'''
『한국비구니수행담록』에 [[법희스님(法喜, 1887生, 비구니)|묘리법희스님(法喜)]]은 1901년에 동운(東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1910년에 해인사에서 해광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법희스님(法喜)에게 비구니계를 수계한 스님으로 알려진 해인사 해광스님의 자세한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회광스님(晦光)[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D%9A%8C%EA%B4%91]의 오기일 가능성이 높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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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구니수행담록』에 [[법희스님(法喜, 1887生, 비구니)|묘리법희스님(法喜)]]은 1901년에 동운(東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1910년에 해인사에서 해광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법희스님(法喜)의 비구니계 계사 해광스님의 자세한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회광스님(晦光)[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D%9A%8C%EA%B4%91]의 오기(誤記)일 가능성이 높다. </br>  
충청남도 예산군 보덕사에 있는 [[탄허택성(呑虛宅成)|탄허스님(呑虛)]]이 쓴 탑비에는 사미니계를 준 동원스님(東遠)은 기록되어 있으나, 비구니계를 준 스님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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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보덕사에 있는 [[탄허택성(呑虛宅成)|탄허스님(呑虛)]]이 쓴 법희스님의 탑비에는 사미니계를 준 동원스님(東遠)은 기록되어 있으나, 비구니계를 준 스님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br>  
그런데 비구니 [[정행스님(淨行, 1902生, 비구니)|정행스님(淨行)]]은 1911년에 해인사에서 회광스님(晦光)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한 것으로 되어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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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구니 [[정행스님(淨行, 1902生, 비구니)|정행스님(淨行)]]은 1911년에 해인사에서 회광스님(晦光)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https://cafe.daum.net/6534800/YxKt/28 화계산 송화사] 다음 카페에는 정행스님의 사미니계 계사스님이 해광스님으로 되어 있어 『한국비구니수행담록』의 '정행스님' 편에 기록된 '회광스님(晦光)'과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당시 비구니스님들이 계사스님의 불명을 구두로 전해듣고 진술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따라서『한국비구니수행담록』에 [[법희스님(法喜, 1887生, 비구니)|묘리법희스님(法喜)]]의 사미니계 계사 스님이 해광스님이 아니라 회광스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br>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은 [https://cafe.daum.net/6534800/YxKt/28 화계산 송화사] 다음 카페에는 정행스님의 사미니계를 수계한 법사스님이 해광스님으로 되어 있어 『한국비구니수행담록』의 '정행스님' 편에 기록된 '회광스님(晦光)'과 달리 법희스님에게 비구니계를 수계한 법사스님 이름인 '해광스님' 이름과 같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한국비구니수행담록』에 [[법희스님(法喜, 1887生, 비구니)|묘리법희스님(法喜)]]의 사미니계 계사 스님이 해광스님이 아니라 회광스님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당시 구술을 받아 적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br>
 
이 당시 역대 고승들의 행적을 적은 《동사열전》에 회광스님(晦光)을 당시 조선의 마지막 대강백(大講伯)으로 기록할 만큼 회광스님은 명망이 높은 스님이었으며 해인사의 주지를 지낸 스님이기도 하지만, [[회광(晦光)스님|회광스님(晦光)]]은 [[금허대련(錦虛大蓮)|대련스님(大蓮)]]과 더불어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친일행적으로 해인사 주지에서 밀려난 인물이다. </br>
 
  
 
[출처 및 참고자료]</br>
 
[출처 및 참고자료]</br>

2024년 5월 1일 (수) 13:33 판

  • 인물명 : 해광스님

『한국비구니수행담록』에 묘리법희스님(法喜)은 1901년에 동운(東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1910년에 해인사에서 해광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법희스님(法喜)의 비구니계 계사 해광스님의 자세한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회광스님(晦光)[1]의 오기(誤記)일 가능성이 높다.
충청남도 예산군 보덕사에 있는 탄허스님(呑虛)이 쓴 법희스님의 탑비에는 사미니계를 준 동원스님(東遠)은 기록되어 있으나, 비구니계를 준 스님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비구니 정행스님(淨行)은 1911년에 해인사에서 회광스님(晦光)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화계산 송화사 다음 카페에는 정행스님의 사미니계 계사스님이 해광스님으로 되어 있어 『한국비구니수행담록』의 '정행스님' 편에 기록된 '회광스님(晦光)'과 다르게 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당시 비구니스님들이 계사스님의 불명을 구두로 전해듣고 진술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따라서『한국비구니수행담록』에 묘리법희스님(法喜)의 사미니계 계사 스님이 해광스님이 아니라 회광스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출처 및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p. 65, 126.
- 위키백과 이회광
- 탄허(홈페이지) 법희선사 비
- 화계산 송화사 정행스님-비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