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지현스님(智賢, 1933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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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권익 보호를 위한 『불교여성관』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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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권익 보호를 위한 『불교여성관』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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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필한 데에는 특별한 동기가 있다.  
 
이 책을 집필한 데에는 특별한 동기가 있다.  
1960년경 부산 소림사에 머물 때 한국 비구니계 3대 강백의 한 분인 [[금룡(金龍, 金光) | 금룡스님]] 노스님이 법상에 앉아 설법을 하시는데, 비구승들이 몰려 와서 비구니가 법상에 올랐다고 야단을 치며 방해를 했다. 신도들이 항의를 하여 설법을 끝마치긴 했으나, 스님은 이에 분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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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경 부산 소림사에 머물 때 한국 비구니계 3대 강백의 한 분인 [[금룡스님(金龍, 1892生, 비구니)| 금룡스님]] 노스님이 법상에 앉아 설법을 하시는데, 비구승들이 몰려 와서 비구니가 법상에 올랐다고 야단을 치며 방해를 했다. 신도들이 항의를 하여 설법을 끝마치긴 했으나, 스님은 이에 분심을 느꼈다.  
한번은 여름날 정혜사 내에서 도반스님과 빨래를 하고 있는데, 모처에서 온 일단의 비구승들이 가사 윗도리를 훌훌 벗어 던져 빨아내라며 호통을 쳤다. 스님은 그들의 무례한 행동에 항의를 했고, 더 이상 비구니가 부당하게 천시당하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불교 여성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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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여름날 정혜사 내에서 도반스님과 빨래를 하고 있는데, 모처에서 온 일단의 비구승들이 가사 윗도리를 훌훌 벗어 던져 빨아내라며 호통을 쳤다. 스님은 그들의 무례한 행동에 항의를 했고, 더 이상 비구니가 부당하게 천시당하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불교 여성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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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1일 (일) 11:56 판



정의

명안(明眼) 지현(智賢)스님은 완산 정혜사에서 주석하신 강백으로서 도제양성과 포교에 헌신하셨으며, 일찍이 비구니 스님들이 비구스님으로부터 차별을 받지 않도록 계몽하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33 제주 출생
1950 제주사범학교 졸업
1951 전북 옥천사에서 혜일(慧日)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3 옥천사 강원 사미니과 수료
1954 정혜사에서 보광(寶光)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5 전주 정혜사 강원 사집과 수료
1957 전주 정혜사 강원 사교과 수료
1959 전주 정혜사 강원 대교과 수료
1960 범어사에서 고암(古庵)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강백 대은스님으로부터 전강 받음
부산 소림사 강의
1962 정혜사 강원 강사로 취임, 30년간 강의
1970 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전북지부 지도법사
2021 입적(2021.11.13; 세납 89세, 법납 71세)
  • 문 중 : 계민(戒珉)문중
  • 저서 및 작품 : 『사성지 참배기(四聖地 參拜記)』(1992), 『불교여성관』외 다수
  • 수계제자 : 법규(法規)

활동 및 공헌

출가

명안(明眼) 지현(智賢)스님은 1933년 3월 28일 제주도 제주시에서 아버지 한사택과 어머니 양석기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이며, 이름은 한정렬(韓貞烈)이다. 예닐곱 살 무렵 어머니가 매일같이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독송하는 소리를 듣고 이를 모두 외워 혼자 수지 독송을 할 만큼 신심이 각별했던 스님은 18세 되던 1950년 제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제주 세화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3개월 후 학교를 그만 두고 집안 식구 몰래 전라북도 태안 옥천사로 출가했다. 이즈음 스님은 물론 어머니와 이모까지 백의관음보살의 영험한 위신력을 직접 체험했다.

지현스님은 묵암스님(1895~1969, 속명 윤주일)이 6·25 전란으로 제주도 피난시절에 처음 만났는데, 묵암스님은 평양에서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 1883~1950)과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분이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지현스님은 묵암스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를 결심했다.
스님은 태안 옥천사 강원에서 유발 상좌로 있으면서 사미니과를 마쳤으나, 정혜사에 다녀온 옥천사 보살들이 '정혜사에는 모두 천인(天人)들만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정혜사로 향했다.정혜사 경내에 들어섰을 때 동자승 대여섯 명이 분홍 장삼을 입고 법당에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스님은 마치 사바세계를 벗어나 천상에 오른 듯 황홀한 환희심을 느꼈다.
그리고 1954년 정혜사에서 김보광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했다. 이때 옥천사 강원에 계시던 김보광 스님을 정혜사 강백으로 모셔와 22세부터 6년간 강원에서 공부했다. 1955년 4월 20일 사집과를 수료하고, 1957년 4월 20일에는 사교과, 그리고 1959년 4월 1일에는 대교과를 모두 마쳤다. 지현스님은 28세 때인 1960년 부산 범어사에서 윤고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비구니 강백의 탄생

묘엄스님과 제자들, 출처:사진으로 본 통합종단 40년사

수경스님 저서인 『한국비구니 강원 발달사』에 의하면, 1956년 묘엄스님경봉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는데 이는 비구니가 비구 강사에게 처음 받은 전강이었다. 묘엄스님은 이듬해에 운허스님에게 전강을 받았으며, 같은 해 태경스님은 만우스님에게, 지현스님은 대은스님에게, 1958년에는 명성스님이 성능스님에게 전강을 받았다. 이로서 지현스님 등 1950년대 4명의 비구니 강사가 탄생했다.
비구 스님들에게 강맥을 전수받은 비구니 스님들은 비구니 강원의 설립과 운영의 주역들이다.

전법 및 포교

1960년 부산 소림사에서 금룡(금광) 노스님의 지도 아래 강의를 했으며, 1962년 전주 정혜사 강백으로 부임하여 이후 평생 강의를 해왔다. 지현스님은 강백이 되기 전부터 학교를 다니지 못한 동자승 등을 대상으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과정을 가르쳤다. 또한 스님은 전주에서는 물론 정혜사가 고산, 정읍, 군산, 이리, 금구 등에 세운 포교당을 다니며 교육과 포교 활동에 전념했다. 한편 1970년부터 1998년까지 29년 동안 대학생불교연합회 전북지부(대불련)의 지도법사로 활동했고, 1990년부터 1998년까지 불교경전 강독을 맡아 강의를 했는데, 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학인의 수는 수천 명에 이른다.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세세히 가르쳐주는 열정을 지닌 스님은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비구니 권익 보호를 위한 『불교여성관』 저술

이 책을 집필한 데에는 특별한 동기가 있다. 1960년경 부산 소림사에 머물 때 한국 비구니계 3대 강백의 한 분인 금룡스님 노스님이 법상에 앉아 설법을 하시는데, 비구승들이 몰려 와서 비구니가 법상에 올랐다고 야단을 치며 방해를 했다. 신도들이 항의를 하여 설법을 끝마치긴 했으나, 스님은 이에 분심을 느꼈다. 한번은 여름날 정혜사 내에서 도반스님과 빨래를 하고 있는데, 모처에서 온 일단의 비구승들이 가사 윗도리를 훌훌 벗어 던져 빨아내라며 호통을 쳤다. 스님은 그들의 무례한 행동에 항의를 했고, 더 이상 비구니가 부당하게 천시당하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불교 여성관』을 썼다.

입적

명안(明眼) 지현(智賢)스님은 2021년 11월 13일 법납 71세, 세납 89세로 입적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법규(法規)스님이 있다.

완산 정혜사의 유례

완산 정혜사, 출처:한국견문록(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a_timing/221716764147 )

완산 정혜사 보광전은 중요무형문화제 제74호 대목장 고택영과 제자 전수조교 김영성의 작품으로
팔작지붕에 15칸(정면5칸,측면 3칸) 다포집으로 날아 갈 듯 치켜선 추녀와 부드러운 곡선미가 볼수록 아름다워 천년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전북 전주시 효자동에 위치한 정혜사는 지역민들에게 안행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5년 전만 해도 동네 이름이 안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전주시의 한적한 변두리에 자리하고 있는 정혜사는 1백여 년 전 정은영 스님의 부친인 정원명 거사가 아들 낳기를 발원하기 위해 사재로 지은 절이다. 한국 근대 불교의 거목이신 경허선사가 쓴 사적기(事跡記)에 의하면 완산 정혜사는 대한제국 광무2년(1898년) 정원명 거사와 최정명,장성우 보살이 발원하여 이곳에 불상을 봉안하고 요사를 지어 처음으로 절터를 닦았다. 풍수지리에 능했던 정거사가 현재의 완산 줄기를 지나치다가 '이곳은 틀림없는 법당 자리이다.'라며 대웅전을 세웠다고 한다.
정혜사 건립 전부터 내려오는 칠성각은 지은 연대조차 모르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소원을 빌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 정명주스님에 의해 정혜사가 사찰로서 품격을 갖추게 된다. 1922년 명주스님이 정혜사에 주석한 이래 보광전을 중건하고, 용화전, 나한전, 완산선원, 명부전, 요사인 무애당, 사천왕문, 범종 제작과 범종각을 건립했으며, 정혜사는 1954년 도제 양성을 위한 전문 강원을 개설했는데, 국내 비구니 강원으로는 최초의 전문 강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백으로 김보광 스님이 계셨고, 보광스님 입적 후 잠시 포광스님이 뒤를 이었다가 대은(大隱)스님이 강백으로 오셨다. 지현스님은 대은스님께 전강을 받았다. 1972년부터 주지 혜명스님은 요사를 중창하고 부처님 진신사리 5층탑을 세웠다. 1987년부터 주지 혜일스님은 혜월, 혜진스님과 사부대중의 도움으로 20여년에 걸쳐 대대적인 불사를 단행했다. 각 전각을 중창, 보수 공사를 통해 대 가람으로 탈바꿈 시켰고, 일주문과 진영전을 신축하여 완산 정혜사를 중흥시킨 중창주이다.
특히 보광전은 중요무형문화제 제74호 대목장 고택영과 제자 전수조교 김영성의 작품으로 팔작지붕에 15칸(정면5칸,측면 3칸) 다포집으로 날아 갈 듯 치켜선 추녀와 부드러운 곡선미가 볼수록 아름다워 천년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정혜사내에 보문유치원과 노인 양로시설인 상락정토마을을 신축하여 포교에 전력을 다하고, 완산 불교회관을 건립하여 전북불교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비구니 사찰로는 드물게 부도전이 있다. 여기에는 금광스님(운문사 초대강주)과 영명스님(보문사 강주)과 명주스님(보문종 종정)등 여러 스님들이 모셔져 있다.

※ 비구니 강원 : 비구니 강원 정혜사(1954-1994), 동학사(1956-), 운문사(1958-), 비구니강원 개심사(1968-1979), 봉녕사(1974-), 화운사(1974-1985), 삼선승가대학(1978-2014; 2014년 삼선불학승가대학원으로 개원), 청암사승가대학(1987-)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지현(智賢)스님 본항목 지현(智賢, 1933~2021) 智賢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지현(智賢,_1933,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지현(智賢)스님 계민(戒珉)문중 ~의 일원이다
지현(智賢)스님 혜일(慧日)스님 ~의 제자이다
지현(智賢)스님 전북 옥천사 ~에서 출가하다
지현(智賢)스님 보광(寶光)스님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지현(智賢)스님 고암(古庵)스님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지현(智賢)스님 강백 대은스님 ~으로부터 전강을 받다
지현(智賢)스님 전주 정혜사 강원 ~에서 30년간 강의하다
지현(智賢)스님] 『불교여성관』 ~을 출판하다
지현(智賢)스님 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에서 전북지부 지도법사를 하다

지도

  • 전주 정혜사(☎ 063-284-3732):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1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