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스님(仁貞, 1899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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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9일 (금) 19:48 판
인정(仁貞)스님 | |
---|---|
법명 | 인정(仁貞) |
법호 | |
속명 | 이인하(李仁夏) |
출생 | 1899년 |
출가 | 1917년 |
입적 | 1978.6.12. |
사찰 | 동학사 미타암 (충남 공주군 반포면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787-2)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인정(仁貞)스님은 동학사 미타암에서 묵언의 교훈을 실천하였고 학인들을 돌본 자비의 화신이었던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899 | 충남 논산 출생 |
1917 | 동학사에서 신도길(愼道吉)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20 | 동학사에서 수연(水蓮) 묘인(妙仁)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동학사에서 수선안거 성만 후 법랍 22년 성만 |
1925 | 동학사에서 수연 묘인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26~1928 | 충남 법주사에서 이용허(李龍墟)법사로부터 법화경을 전부 수료 |
1929~1931 | 동학사에서 백초월(白初月)법사로부터 화엄경 수료 |
1932~1932 | 동학사에서 유대은(兪大恩) 법사로부터 목련경(目蓮經) 및 지장경(地藏經)수료 |
1933 | 동학사 말사 동전감원(東殿監院) |
1978. 6. 12. | 동학사 미타암에서 입적 (세수 78세, 법납 62세) |
※ 구승적본 참조, 삼현문중 계보 참조
문중 | 삼현(三賢)문중 |
수계제자 | 지현(智玄)・봉민(奉敏)・성우(惺牛)・지관(智觀)・지안(智晏)(동성(東城)출처: 『한국의 비구니 문중(하춘생 著)』)・혜문(慧文)・지성(智成)・보현(普賢)・현진(玄眞) |
활동 및 공헌
출가
인정(仁貞)스님은 1899년 3월 15일 충남 논산군 두마면 유동리에서 아버지 이범범(李範凡)과 어머니 윤범낭(尹範娘)사이에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이며, 이름은 이인하이다.
수행과 교육
1917년 동학사에서 신도길(愼道吉)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동학사에서 1920년 1월 15일 안거 성만 후 22년 동안 참선 수행을 하였으며, 용허(龍虛)법사로부터 법화경을 전부 수료하였다. 이때 수학한 법화경을 평생의 수행지침으로 삼았다고한다.
자비의 화신
대범하고도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스님은 어려운 시절 동학사 학인들을 잘 감싸고 배려해주었다. 동학사 학인들이 재를 지내던 중 상단불공만 드린 후 신중단으로 옮기는 듯 하더니 떡과 과일을 들고 다들 슬금슬금 사라진 일이 있었는데, 스님은 당황하지 않고 대범한 모습으로 재를 지내러 온 사람들에게 “오늘 학인스님들에게 공양을 잘 하여서 영가 분은 저절로 극락왕생 한 겁니다.”하고 학인들을 변호하여 주었다. 또한 학인들이 엿을 항아리째 갔다 먹자 항아리를 찾으러 가면서 혼자 말씀으로 ‘엿을 다 먹었으면 항아리나 가져오지.’ 하시며 자비로 감싸주었다.
묵언의 교훈
인정스님은 한 그루의 백송이 수백 년의 연륜을 쌓아 오면서도 언제나 아무 말이 없는데서 묵언의 교훈을 배웠고, 일생을 넉넉한 마음으로 다른 이의 흉허물을 하신 적이 없었다. 함께 지내던 스님 한 분이 사람에 대해 편파적으로 좋고 싫음을 극명하게 말하자 “좋아하는 사람은 타화자재천까지 올리고 싫어하는 사람은 무간지옥까지 끌어내린다.”며 못마땅한 심정을 드러낸 게 다른 이를 흉본 유일한 경우였다고 한다.
노안 속에서도 늘 맑은 미소를 머금고 있던 스님은 유머 감각도도 뛰어났다. 한 번은 석남사에 상좌스님이 결제 중이라 당시 귀한 밤 공양을 갔다. 그런데 뜨락에 가득히 널려 있는 밤을 보고 “한강에 물 팔러 왔구나!”하고 호탕하게 웃었다고 한다.
넉넉한 자비심으로 정신하시는 스님은 외롭게 홀로 임종을 맞이하는 노스님을 극진이 모셨으며, 그 분이 남기신 전답과 유품은 잘 거두어 사중에 보태어 오늘날의 미타사 터전을 마련하였다.
입적
스님은 1978년 6월 12일 동학사 미타암에서 세수 80세, 법납 62세로 세속의 연을 다하였다.
스님의 수계 제자로는 지현(智玄)・봉민(奉敏)・성우(惺牛)・지관(智觀)・지안(智晏)(동성(東城) 출처: 『한국의 비구니 문중(하춘생 著)』)・혜문(慧文)・지성(智成)・보현(普賢)・현진(玄眞)스님 등이 있고 손상좌로는 운달(雲達)·청룡·요명·운성·보연·혜균·귀영·혜원·성우·도용·진욱·청조·적조·도선·묘광·묘연·시영·법성·법민·정일스님 등이 스님의 유지를 따르고 있다.
동학사 미타암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p. 172~174 .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357.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181~ 183.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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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仁貞)스님 | 본항목 | 인정스님(仁貞, 1951~2014) | 仁貞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인정스님(仁貞,_1899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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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仁貞)스님 | 삼현(三賢)문중 | ~의 일원이다 |
인정(仁貞)스님 | 신도길(愼道吉)스님 | ~의 제자이다 |
인정(仁貞)스님 | 동학사 | ~에서 출가하다 |
인정(仁貞)스님 | 수연(水蓮) 묘인(妙仁)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인정(仁貞)스님 | 수연(水蓮) 묘인(妙仁)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지도
- 동학사 미타암 (충남 공주군 반포면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7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