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륜사 천경림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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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칭 : 흥륜사(興輪寺) 천경림선원(天鏡林禪院)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사정동 281-2

흥륜사(興輪寺)는 신라 최초의 가람으로서 사적(事蹟)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온 최초의 승려 아도(阿道)가 창건한 사찰이라 전하며, 그 연도에 대하여 다소 이설(異說)이 있으나 눌지왕 때로 보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법흥왕 14년(527) 불교 공인을 둘러싸고 이차돈이 순교하자 이적(異蹟)에 놀라고 슬퍼하여 그를 위하여 절을 짓고 천경림(天鏡林) 공사를 다시 진행시켜 진흥왕 5년(544) 5월에 완공하였다. 따라서 진흥왕은 중흥조가 되는 것이다. 진흥왕은 이 절을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 하고, 그 해 3월 백성들이 출가하여 승니(僧尼)가 되는 것을 허락하는 한편, 궁중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절에 머물게 하였다. 진흥왕은 만년에 스스로 삭발하여 법운(法雲)이라는 법명을 받고 이 절의 주지가 되었다. 그 뒤 흥륜사는 대법회를 주관하는 도량이 되었고, 왕실과 국가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영험 도량으로 존중되기도 하였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한 김대성이 밭을 보시한 절도 흥륜사이며, 김현(金現)이 호랑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 절이었다. 금당에는 신라십성(新羅十聖)을 그린 벽화가 있었다.
한때는 황룡사(黃龍寺)·사천왕사(四天王寺)와 함께 굴지의 규모를 가졌으나, 신라 말에 반군(叛軍)의 방화로 남문과 낭무(廊廡)가 불탔다.

조선시대에 화재로 소실된 뒤 폐사가 되었으며, 유물로는 석조(石槽)와 배례석(拜禮石)이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이곳에서 출토된 국내에서 유일한 인면문(人面文) 와당(瓦當)은 미소짓는 얼굴을 기와에 조각한 것으로, 일본인에 의하여 일제 때 반출되었다가 1972년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근래에 흥륜사에 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가 발굴 작업이 1972년과 1977년 6월에 실시되어 금당지의 일부가 발굴되었다. 한편 향곡(香谷) 스님이 이차돈의 순교성지를 복원하는 것이 후손된 도리라 하며 흥륜사의 복원을 발원한 것이 계기가 되어 흥륜사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이때 큰 공덕을 세운 사람은 다름 아닌 원만(圓滿) 비구니였다. 원만 스님은 천경림 일대 5천여 평을 확보하여 사찰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경림선원(天鏡林禪院)은 향곡 스님이 흥륜사 복원 발원을 일으킨 때부터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향곡 스님의 뜻을 받든 원만 비구니 스님이 1971년 이래 천경림 일대 5천여 평을 확보하여 사찰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하였으며, 신라 십성(十聖)을 모신 금당(金堂)을 건립하고 비구니계의 대덕 혜해(慧海) 스님을 선원장으로 모시고 선원을 개원했다.

[출처 및 참고자료]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p. 863~8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