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삼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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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명 : 함양 삼불사(咸陽 三佛寺)
  • 소재지 : 경남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 1108 (경남 함양군 마천면 도마앞길 204)

삼불사(三佛寺)는 1686년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52~1707)의 산중일기에 상고대암(上高臺庵)으로 나온다. 확인이 더 필요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유일한 기록이다. 삼불사는 ‘지리산 7암자 순례 코스 가운데 한 곳’으로, 견성골을 거쳐 도마마을로 하산하는 길과, 전북 남원 실상사 산내암자인 약수암으로 분기되는 곳이다.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다는 설은 전하지만 사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리산 자락의 여느 사암(寺庵)처럼 한국전쟁의 전화(戰禍)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1960에 김혜관, 오운영 등이 중건하여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삼았다. 중창 초기에는 비구니 승려 20여 명이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현재는 비구스님이 주석하며 당우로는 관음보살을 모신 인법당. 독특하고 사례가 없는 8분의 산신을 모시고 있으며, 근세에 세운 탑도 이례적인 특징을 지닌 삼층석탑이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조선 후기에 조성한 보살상으로 추정하며, 1960년 경 중창 때에 개화사(서울 강서구의 사찰로 추정)에서 이안(移安)한 상이라고 전한다.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관 사이로 빠져나온 보발은 귀를 감고 어깨 위까지 흘러 내렸다. 장방형의 상호, 백호는 인중 사이에 있다. 눈은 반개(半開)하였으며 코는 오뚝하고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두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구품 수인중에 중품하생을 결하고 있다. 목에는 삼도를 새겼고 이중착의법의 법의, 수평의 승각기(僧脚崎) 매듭, 대의 자락이 무릎사이로 흘러내렸고 오른쪽 발이 위에 놓이는 길상좌(吉祥坐)이다. 비지정 문화재이지만, 상호를 앞으로 약간 숙인 모습 등의 조선 후기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문화재 지정이 가능한 보살상이다.
산신각은 황토와 돌을 섞어 만들었다. 산신각 내에는 8점의 산신도와 7구의 석조산신상이 봉안된 독특하고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배치이다. 중앙에 모신 산신은 여성 산신이다. 좌측 1곳에는 산신도만 있다. 아마 수신각에 용왕상을 대체하여 모신 상이 산신각에 있었던 상으로 추정된다. 8분의 산신을 봉한한 내력은 전하지 않지만 지리산 산신사상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비지정 문화재이다. 사찰의 산신각은 민간의 전통 산신 신앙을 불교 전파 과정에서 수용한 것이다. 사찰 외호신(外護神)인 산신을 단독으로 호랑이와 산신을 함께 봉안한 곳은 산신각이며,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하는 독성상,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함께 모실 경우에는 삼성각(三聖閣)에 봉안한다.
삼층석탑은 최근에 조성한 석탑이지만 주목할만한 흥미로운 조형이 있다. 기단 중석의 각각 면에 신장상 2분을 모셨고, 초층 탑신석 전, 후면에는 이불 병좌상(二佛倂坐像), 좌우에 석불좌상을 새겼다. 특히 이불 병좌(입)상은, 괴산 원풍리 마애불, 청주 보살사, 군위 동림사, 충주 미륵대원 지 등 18여 기 유존하지만 석탑 부재로 사용되었던 사례는 동국대 박물관의 보협인석탑, 서울 경천사지 10층 석탑, 영주 포교당 석탑 부재 뿐이다. 또한 옥개석에 기왓골을 표현한 석탑은 전무후무한 사례이다. 이와 같이 삼불사 삼층석탑은 근자에 조성되었지만 미래 석탑 조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유형의 석탑으로 주목 받을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 및 참고자료]
- 兜率山 燕巢齋(도솔산 연소재) 함양군 마천면 삼정산 자락의 삼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