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월경산(鶴月京山)
- 법호·법명 : 학월경산(鶴月京山, 1917~1979)
- 생애·업적
경산스님은 1917년 함경남도 풍산군 안산면 황수원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손봉준(孫鳳俊), 모친은 이(李)씨다. 속가의 이름은 희진(喜璡)이다. 1936년 금강산 유점사로 입산, 출가하여 홍수암(洪秀庵)스님을 은사로, 해운(海雲)스님을 계사로 수계했다. 법명을 경산(慶山)이라 했다. (1975년 이후 京山으로 바뀜)
1940년 유점사 불교전문 강원 대교과를 수료하고 금강산 마하연사에서 하안거를 났다. 1941년 덕숭산 정혜사에서 만공스님을 모시고 하안거를, 1942년 지리산 칠불암에서 석우스님을 모시고 안거하고 1943년에는 영축산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경봉스님을 모시고 안거했으며 1944년에는 오대산 상원사 한암스님 회상에서 안거 정진했다. 1944~1946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안거하고 남으로 내려온 스님은 1946~1950년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경봉스님을 모시고 정진했다. 경산스님은 약 4년 간 극락선원에 머물면서 참선수행에 몰두하여 경봉스님에게서 법을 인가받고 법제자가 되었다.
1950~53년 금정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모시고 정진,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53년 통영 미래사 도솔암에서 효봉스님을 모시고 정진하던 스님은 1954년 정화가 시작되자 서울로 올라왔다. 1955년 효봉 청담 인곡 월하스님과 함께 불교대책정화위원회(문교부 중재로 구성)의 비구측 대표로 활동했으며 비구승으로 구성된 최초의 조계종에서 중앙종회 의원에 선출됐다.
1956~58년 조계종 총무원 재무부장, 교무부장, 총무부장 등을 역임. 1959년 서울 적조암(성북구 돈암동)에 주석. 1960년 조계종 비구 측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됨. 1961~62년 통합종단 전 조계종 제6대 총무원장 역임. 1962년 통합종단이 출범하면서 제1대 중앙종회 차석부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구례 화엄사 주지를 역임했다. 1963~64년 총무원 교무부장(63년) 건봉사 주지(63년) 총무부장(64년)을 역임했다.
1963~67년 동국대 제18대 이사장을 역임한 스님은 종비생 제도를 발의, 추진하고(63년) 동국대에 역경원을 개설하고(64년) 군승제도를 추진(68년에 시행), 1965년 대한불교화동위원회의 조계종단 대표로 선출되었으며 1966~67년 조계종 제3대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1968~72년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 수행. 1972~73년 동화사 주지, 1973~75년 조계종 제9대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1975년 1월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성취했다.
1978~79년 숭산스님이 설립한 미국 달마사 조실 역임. 1979년 통합종단 출범 후 세 번째 총무원장에 선출되었다. 이해 12월 법문집 <삼천전심(三處傳心)>이 출간됐다. 같은 해 12월25일(음력11월7일) 총무원장 취임 약 한 달만에 종무회의 중 입적했다. 과로로 인한 뇌출혈이 원인이었다. 12월29일 조계사에서 종단장으로 영결식이 치러졌다. 법랍44세, 세수63세. 스님 입적 후 적조암에 스님의 사리탑비와 부도탑이 세워졌다. 탑비의 비문은 탄허스님이 짓고 썼다.(1983년) 2018년 11월 경산스님일대기 <청정율사 경산스님의 삶과 가르침>이 발간됐다.(박원자 지음. 동국대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