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견성암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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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칭 : 수덕사 견성암선원(修德寺 見性庵禪院)
  • 주소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22-3

수덕사 견성암(見性庵)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부속암자이다. 이 암자는 창건 시부터 선원으로 출발한 까닭에 선원 연혁이 곧 사찰 연혁이다. 수덕사 덕숭총림(德崇叢林)내에서는 비구 참선도량인 정혜사의 능인선원과 함께 비구니 참선도량으로서 그 이름이 높을 뿐 아니라 전국 비구니 참선도량 중 가장 대표적인 수도처이다.
과거 정혜사 우측 위 동쪽에 자리 잡았던 견성암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다만 법희(法喜) 스님이 1913년에 견성암으로 와 정진했으며 1916년에 견성암에서 만공(滿空)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므로 최소한 1913년 이전에 견성암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법희 스님이 수선할 당시 견성암은 두어 칸 남짓의 토굴에 지나지 않았지만, 결제 때만 되면 만공 스님을 뵈려고 40, 50명의 납자가 북적거렸다 한다. 견성암 창건의 공덕주는 비구니 도흡(道洽) 스님이다. 스님의 큰 시주와 대중의 동참으로 초가집을 지어 산문을 열었던 것이다. 1928년 만공 스님은 〈견성암방함록서(見性庵芳啣錄序)〉를 써 견성암 선원이 명실상부한 비구니 선원으로서 확고히 자리 잡게 되는 기틀을 마련해 여법하게 제1회 안거자를 배출하였다. 초가집으로 시작한 견성암은 그 후 함석집, 기와집으로 증·개축을 거듭하다가 1940년경 기와집을 이었다.
많은 비구니 스님이 견성암으로 와 만공 스님을 참례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근·현대 비구니 스님의 법맥은 만공 스님 문하의 견성암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이곳은 개화기의 여류시인 김일엽(金一葉, 법명은 荷葉)스님이 1930년대부터 수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견성암 선원은 1965년에 벽초 스님이 지금의 수덕사 서쪽 덕숭산 기슭에 석조 2층 건물로 선방을 세워 새로운 중흥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때 벽초 스님 이하 전 대중이 서해안의 돌을 직접 나르는 등 합심하여 선원 건물을 완성하였다(당시 도감 : 수인, 재무 : 정관). 그 후 1986년 당시 도감을 맡은 수연 스님이 견성암 본당(1층은 선방, 2층은 법당) 좌측에 서선당(西禪堂, 편액 圓潭 친필)을 짓고 선방 본당에 기와를 얹었다.
견성암 선원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석조건물이다. 1층 중앙에 장판지 100장이 깔릴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중 큰방이 있고 2층에는 조석예불을 모시는 법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결제철이면 전국 각지에서 수좌 스님들이 몰려와 보통 100여 명의 대중이 안거를 하고 있으며, 해제철 본방 대중 수만 하여도 60 여 명은 족히 넘는다. 1998년도에 외호대중을 뺀 순수한 하안거 정진 대중 수는 51명이다. 또 한 이곳은 다른 선방과는 달리 대중 스님들 중에서 소임자를 선출하여 돌려가면서 대중 외호를 함으로써 보다 원융한 살림살이를 꾸려가고 있다. 소임기간은 약 1년간이다. 자체 내 견성암 법계도를 갖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사중에 소장된 주요 선사 유품으로는 견성암 2층 법당에 걸린 1929년 만공 스님의 친필 현판, ‘견성암(見性庵)’과 ‘칠근루(七斤樓)’ 휘호가 있다. 또한 1928년도에 쓴 만공 스님의 친필 방함록을 사중에 보관하고 있다. 만공 스님의 뜻을 받들어 세운 도흡 스님의 창건 공덕비는 옛날 견성암 자리 위에 세웠으나, 견성암이 현재의 위치로 내려오면서 공덕비를 현재의 견성암 입구 오른쪽 바위에 옮겨 세웠다.

[출처 및 참고자료]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