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간월암

biguni
이동: 둘러보기, 검색
  • 사찰명 : 서산 간월암(看月庵)
  • 주소 :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16-11

간월암(看月庵)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암자이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만공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무학대사는 1392년 왕사로서 조선 개국에 참여 했고, 한양 천도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 공으로 인해 간월도와 인근의 황도를 하사 받아 절을 지었으니 그가 지은 절을 무학사(無學寺)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폐사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학 대사는 간월암을 떠나면서 짚고 다니던 주장자를 뜰에 꽂으며, 지팡이에 잎이 피어나 나무가 되어 자랄 것인데 그 나무가 말라죽으면 나라가 쇠망할 것이요, 죽었던 나무에서 다시 잎이 피면 국운이 돌아 올 것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만공스님은 죽었던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간월암을 찾으니 암자는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 묘가 들어서 있었는데, 실제 귀목나무에서 새파란 잎이 돋아나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머물며 중창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기도 회향 전에 김씨 가문에서 묘를 이장해 가는 가피가 답지하였고, 절터를 되찾은 다음 제법 모습을 갖춘 암자를 짓고 손수 간월암이라는 현판을 써서 내건 후 종종 찾아와서 한소식을 했었던 추억의 장소가 간월암인 것이다.
언젠가 만공스님이 끝없이 보채는 파도를 보다가 송(頌)을 한수 읊었다.


       불조불우객(佛祖不友客) 부처와 조사를 더불어 벗하지 않는 객이
       하사벽파친(何事壁波親) 무슨 일로 푸른 물결과는 친했는고
       아본반도인(我本半島人) 내 본래 반도 사람이라
       자연여시지(自然如是止) 자연에 이와 같이 멈추노라

만공스님이 중창 불사를 한 후 간월암은 벽초, 서해, 진암스님의 발길이 닿았었고 경봉, 춘성, 효봉, 금오, 성철스님등 기라성 같은 도인들이 간월암에 수행의 족적(足跡)을 남겼다
무엇 보다 간월암이 유명해진 것은 1942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만공스님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천일기도를 했고 천일기도 회향 사흘 후 조국이 독립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지척에 살던 만해 한용운 스님이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써 세속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면 만공스님은 마곡사와 수덕사를 중심으로 선원에서 정진하며 웬만해서는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 또한 선학원을 만들어 일제의 한국불교말살 정책과 총독부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신 수행가풍을 지키기 위해 헌신 하였으니, 한국불교에 있어서 만공스님의 위치는 확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국의 독립 소식을 전해들은 만공스님은 무궁화 꽃에 먹물을 듬뿍 찍어 ‘세계일화(世界一花)’라고 쓰시고 대중 앞에서 말씀하시길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다. 머지않아 이 조선(朝鮮)이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중심이 될 것이다.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저 미웠던 왜놈들까지도 부처로 보아야 이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이다."
라고 하셨으니 그 법기(法器)의 크기를 가늠이나 할 수 있으랴.
1980년대 진행된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인해 육지와 연결된 간월도.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배를 타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작은 섬이었다.

[출처] 사단법인 감악산별기은제보존회 [서산간월암] 서해바다위에 있는 멋진 기도터 바다길이 열려야 들어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