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용각(大雲龍覺)
- 인물명 : 대운용각(大雲龍覺)
대운용각(大雲龍覺, 1868~1936)스님은 김천 청암사에서 주지를 지냈으며, 청암사를 중창했다.
청암사의 아쉽고 안타까운 역사를 압축하고 있다. 청암사는 어지간히 불이 잦았다. 중간의 역사는 알 수 없지만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청암사는 조선 인조 25년(1647) 화재를 당해 전소되는 비운을 맞는다. 복구가 이루어진 청암사는 그러나 이로부터 130여 년 뒤인 정조 6년(1782) 다시 큰불이 나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는다. 이때도 바로 재건이 이루어진다.
그뒤 점차 퇴락해가던 청암사가 새로워지는 것은 20세기가 다 되어서이다. 광무 1년(1897) 청암사를 중수하기 위해 화주로 나선 대운(大雲, 1868~1936)스님이 8년에 걸쳐 청암사를 모두 보수한 뒤, 이어서 극락전을 새로 짓고 여기에 42수 관음상을 봉안하는 공덕을 쌓는다.
이렇게 보수를 끝낸 지 6년 만인 1911년 9월 또다시 원인 모를 불이 나 극락전과 백련암을 제외한 청암사를 모두 불태운다. 이에 대운스님은 다시 청암사를 일으켜 이듬해 봄에 복구를 마무리한다.
우리가 보는 청암사는 이때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비각의 임자가 바로 대운당 용각스님이다. 청암사에는 대운당비각이 있다.
청암사는 불영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헌안왕 3년(859) 도선국사가 건립한 고찰이다.
사적에 따르면 조선 인조 25년(1647)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벽암 각성스님이 이 소식을 듣고 허정 혜원스님으로 하여금 재건토록 하였으며, 이에 혜원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청암사를 중창하였다. 그 후 숙종의 정비 인현왕후가 서인으로 있을 때 청암사 극락전에서 특별기도를 올린 인연으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불영산의 적송산림이 국가보호림으로 지정되어 궁에서 무기 등이 하사되었으며 조선시대 말까지 상궁들이 신앙생활을 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고종 9년(1905) 주지 대운당스님이 잠결에 빨간 주머니를 얻는 꿈을 꾼 후 한양에 가니, 어느 노보살님이 자신이 죽은 후에 염불을 부탁하며 대시주를 하였다. 이로 인해 대운당스님은 쇠락한 극락전을 중건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바롱이와 떠나요 인현왕후가 머물던 절
- 열린관광 모두의 여행 청암사(김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