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봉선사

biguni
이동: 둘러보기, 검색
  • 사찰명 : 남양주 봉선사(奉先寺)
  • 주소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55

남양주 봉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969년(광종 20)에 법인국사(法印國師)탄문(坦文)이 창건하여 운악사(雲岳寺)라고 하였다.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이전의 7종을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할 때 이 절을 혁파하였다가, 1469년(예종 1)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가 세조를 추모하여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의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奉先寺)라고 하였다.
당시 봉선사의 현판은 예종이 직접 썼다고 하며, 현재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는 봉선사대종을 같은 해에 주조하였다고 한다. 1550년(명종 5)에 이 절은 선교양종 중 교종의 수사찰(首寺刹)로 지정되어 전국의 승려 및 신도에 대한 교학진흥의 중추적 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으며, 이듬해인 1593년에 주지 낭혜(朗慧)가 중창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으로 다시 소실된 것을 1637년에 주지 계민(戒敏)이 중창하였으며, 1749년(영조 25)에는 재점(再霑)이 중수하였다.
1790년(정조 14)에는 나라에서 전국사찰을 관할하기 위한 5규정소(五糾正所)를 설치할 때 이 절은 함경도 일원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1848년(헌종 14)에는 화주 성암(誠庵)과 월성(月城)이 중수하였고, 1902년에 도성 안의 원흥사(元興寺)를 수사찰인 대법산(大法山)으로 삼았을 때 이 절은 16개의 중법산(中法山) 가운데 하나로 지정되어 경기도의 전 사찰을 관장하였다. 1911년에 사찰령이 반포되었을 때는 31본산의 하나가 되었고, 교종대본산으로 지정되어 교학진흥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또 1926년에는 주지 월초(月初)가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수하고 삼성각(三聖閣)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1951년 3월 6일에 법당 등 14동 150칸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뒤 1959년에 화엄(華嚴)이 범종각을 세운 데 이어 1961년부터 1963년까지운경(雲鏡)과 능허(凌虛)가 운하당(雲霞堂)을 세웠고, 1970년에는 주지 운허(耘虛)가 큰법당을 중건하고 1977년에는 월운(月雲)이 영각(靈閣)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큰법당·삼성각·개건당(開建堂)·방적당(放跡堂)·운하당·범종각·청풍루(淸風樓)·요사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큰법당은 대웅전과 같은 법당으로서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한글현판을 단 것이다. 법당 사방 벽에는 한글 『법화경』과 한문 『법화경』을 동판에 새겨놓아 이채롭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397호로 지정된 남양주 봉선사 동종을 비롯하여 1903년에 그린 칠성탱화, 사찰 입구의 보운당부도(報雲堂浮屠) 등이 있다.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