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서 영원으로』 해당부분

bigun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삼칠일 기도로 살려낸 은사스님>

(불필스님의) 은사스님(인홍스님)께서 얼마나 힘있게 일을 몰아붙였는지 어느덧 석남사는 정진도량으로 입지를 굳혀, 출가하는 사람은 석남사로 가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너무 몸을 혹사하셨는지 그만 병이 나시고 말았다.

갑자기 배가 끊어질 듯 아프다며 아무 것도 드시지 못했다.

병원에 모시고 가봤으나 한방과 양방 모두 정확한 원인을 찾지못했다.

나는 곁에서 책을 읽어드리기도하고 통증 부위에 소금찜질을 해드리기도하면서 은사스님을 보살폈다.

병원과 석남사를 오가던 사형 법희스님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출가하는 날부터 은사스님곁을 떠나지않고 시봉했던 효상좌 법희스님은 누구보다 은사스님의 병을 안타까와했다.

병명도 모른 채 2개월이 지나갔고, 병은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인명은 재천이다.

아마 속가 집에서 어장을 했던 과보를 내가 받나보다.

이렇게 치르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안되겠다싶어 당시 부산에서 제일 유명했던 메리놀 병원을 찾아갔다.

원장으로 있던 외국인 수녀님을 만나 사정이야기를 하고 진찰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간호사가 처음 온 환자는 일주일 후에나 입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은사스님을 모시고 병원을 다녔던 나는 문득 몇년 전 은사스님을 모시고 메리놀 병원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간호사가 몇년 전 기록을 찾아냈다.

다음날 바로 스님을 모시고 갔더니 원장은 "췌장에 이상이 있다"면서 영도에 있는 침례병원장앞으로 소개서를 써주었다.

검진을 마친 독일인 침례병원장이 췌장이 곪아서 터지기 일보직전이라고 했다.

그것도 모르고 보살펴드린다고 소금찜질을 해댔으니, 무지한 상좌때문에 고생을

더 하신 것이다.

수술날짜를 잡고 나서 바로 법희스님과 함께 성전암에 계신 성철큰스님을 찾아갔다.

혹시 은사스님을 잃을지 모른다는 절박함때문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성전암에 도착하자 마침 포행중이던 큰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간의 이야기를 들은 큰스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이런 방책을 내놓으셨다.

"너거들 대장 아직 죽으면 안된다.

살려내야 되는기라. 이렇게 하그라,

돌아가서 능엄주와 대참회로 삼칠일(21일) 기도를 해.

스무하루 동안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일분일초도 그쳐서는 안된다.

향을 피워놓고 두 사람은 백팔대참회를 하고 두 사람은 능엄주를 해라.

기도하는 동안 대웅전 법당안에 일반인들을 들여놓지 마라."

큰스님의 말씀을 듣자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석남사로 돌아와 맏사형인 묘경스님에게 큰스님의 말씀을전한 후 대중공사를 해서 조를 짜고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를 집전하는 부전을 16명으로 구성하고 능엄주를 하는 두 사람, 백팔참회를 하면서 절을 하는 두 사람, 이렇게 네 사람을 한 팀으로 네 팀을 만들었다.

그리고, 두 시간식 교대하면서 24시간 내내 21일에 걸친 장좌기도를 시작했다.

다음날 법희스님과 병원으로 가니 스님은 이미 수술실로 들어가 계셨다.

일주일동안 검사를 한 후 수술하기로 했는데 상태가 너무 안좋아 급히 수술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석남사 대중이 기도를 시작한 바로 그 시간이었다.

석남사 대중 스님들이 얼마나 혼신을 다해 기도를 했던지 나중에 선원의 입승을 보던 성우스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선방 스님들까지 모두 나와 기도를 하고 선방에 앉으면, 온 도량에서 '지심귀명례'하는 소리가 울렸지."

은사 스님의 수술은 무려 8시간이나 걸려서 끝이 났다.

수술을 집도한 원장은 "췌장이 곪아서 터져 있었는데도 살아난 것이 기적입니다.

1,000명중 한 사람도 성공하기 힘든 수술이라서 결과를 본국에 보고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은사스님을 살려내야한다는 대중들의 한마음이 하늘을 움직인 것이다.

원장은 수술후에도 고통이 심할 것이라면서 은사스님곁을 떠나지 않으며 신경을 써주었다.

수술후 은사 스님의 몸에서는 호스를 통해 피고름이 한없이 흘러나왔다.

몸이 그렇게 되도록 정진과 불사에 매달려 계셨던 것이다.

기와를 갈아 끼우기위해 몸소 지붕에 올라가 일을 했고, 석남사에서 언양까지 30리 길을 걸어 외출했다가 아주 늦게 돌아와서도 곧바로 선방에 들어가 앉으셨다.

사흘 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스님은 우리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시원하구나.

수술대에 누워있는데 문수보살님과 보현보살님, 그리고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이 나타나시더니 네 분 모두 내 주위에 둘러서서 배를 만져주시더구나.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었어."

췌장의 염증은 다른 부위의 염증보다 고통이 더욱 심하다고 하는데 은사스님은 수술후 진통제를 맞지않고 일주일만에 실밥을 뽑으면서 빠르게 회복하셨다.

병세가 회복하는 중에도 석남사에서의 기도는 계속되고있었다.

21일 동안의 장좌불와 기도를 회향하는 날 퇴원하신 스님은 가사장삼을 수하신 채 석남사 대웅전 한가운데 서서 삼배를 올리셨다.

1964년 늦가을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혼연일체를 이루었던 아름다운 기도회향을 잊지 못한다.

지극한 기도에 가피를 내리신 부처님, 기도 방법을 일러주시며 살려내라고 하신 큰스님, 큰 수술을 이겨내고 살아 돌아오신 은사스님께 감사의 삼배를 올리던 그 순간을 잊지않고 살아왔다.

은사스님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병고를 치르셨는데, 여든을 넘기고는 다리가 불편해 걷는 것이 수월치 않으셨는데도 예불시간이면 언제나 가사장삼을 차려입고 당신 방에서 아침 저녁으로 예불 드리는 것을 빼놓지 않으셨다.

승가의 전통이란 훌륭한 스승과 그 가르침을 진심으로 받드는 제자들이 한 마음이 될 때에만 지속되는 것이다.

그 때 이후 석남사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흘부터 일주일동안 능엄주와 대참회로 정진하는 장좌기도가 전통이 되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 출처:  불필스님저 영원에서 영원으로 (불필스님 회고록, 김영사)

퍼온 곳: [영험담] 삼칠일 기도로 살려낸 은사스님 / 불필스님|작성자 묘광월(https://blog.naver.com/mkw728/222499624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