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종(始興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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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11개 종파의 하나로, 열반종(涅槃宗)으로 추정되는 종파.

개설

시흥종(始興宗)은 열반종으로 추정되는 종파로서,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의 승려 보덕(普德)이 열반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으나 이후 종파로 성립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고려시대에는 오교양종 가운데 오교에 열반종이 포함되었고, 조선초기에는 시흥종이라는 명칭으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태종대에는 국가에서 공인한 7개 종파 중 하나였으나, 세종 연간에 선교양종(禪敎兩宗) 체제가 성립하면서 화엄종(華嚴宗) 등과 함께 교종에 통합되었다.

내용 및 변천

한국에서 열반종의 연원은 고구려의 승려 보덕으로 소급된다. 그는 『열반경(涅槃經)』에 정통하였는데, 고구려보장왕이 도교를 존숭함에 따라 650년(백제 의자왕 10)에 백제로 옮겨 갔다. 완산주에 주석(駐錫)하면서 열반학을 강의하였는데, 원효(元曉) 또한 그에게서 배웠다고 전한다. 다만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열반종이 종파로서 성립된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고려시대에 열반종은 오교양종 중 오교에 속하였다. 오교는 대체로 계율(戒律), 법상(法相), 법성(法性), 원융(圓融), 열반(涅槃)을 가리킨다. 조선초에는 시흥종이라는 명칭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 연간에 억불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오교양종의 혁파가 논의되었다. 그 결과 11개 종파의 242개 사찰에 대해서만 토지 및 노비의 소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11개 종파는 시흥종을 비롯해 조계종(曹溪宗)·총지종(摠持宗)·천태소자종(天台疏字宗)·법사종(法事宗)·화엄종(華嚴宗)·도문종(道門宗)·자은종(慈恩宗)·중도종(中道宗)·신인종(神印宗)·남산종(南山宗) 등이다. 시흥종에 속한 10개의 사찰이 국가의 인정을 받았고, 해당 사찰의 소유 토지 및 노비 수도 각각 정해졌다(『태종실록』 6년 3월 27일).

이어 1407년(태종 7)에는 11개 종파를 다시 7개로 축소, 통합하였다. 천태소자종과 법사종은 천태종으로, 중도종과 신인종은 중신종(中神宗)으로 통합하였다. 또 총지종과 남산종은 총남종(摠南宗)으로 통합하였으며, 도문종은 화엄종에 포함시켰으나, 시흥종은 조계종·자은종과 함께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때 고려시대 이래로 이어져 온 88개의 자복사(資福寺)를 새로운 명찰(名刹)로 대체하였는데, 시흥종에서는 연주 오봉사(五峰寺), 연풍 하거사(霞居寺), 고흥 적조사(寂照寺)가 새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시흥종은 이후 세종대인 1424년(세종 6)에 7개 종파를 다시 선교양종으로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화엄종·자은종·중신종과 더불어 교종에 포함되었다.

참고문헌

  • 「흥왕사대각국사묘지명(興王寺大覺國師墓誌銘)」
  • 권상로, 『조선불교사개설』, 불교시보사, 1939.
  • 김영수, 『조선불교사고』, 중앙불교전문학교, 1939.
  •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임제법통과 교학전통』, 신구문화사, 2010.
  • 안계현, 『한국불교사연구』, 동화출판사, 1982.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高橋亨, 『李朝佛敎』, 寶文館,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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