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후(朴慶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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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44년(인조 22)~ 1706년(숙종 32) = 63세]. 조선 후기 숙종때 활동한 문신. 행직(行職)은 병조 참판(參判)이다. 자는 휴경(休卿)이고, 호는 취옹(醉翁)·만오(晩悟)이며,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아버지는 부사(府使)박상욱(朴尙郁)이며, 어머니 양천 허씨(陽川許氏)는 허계(許啓)의 딸이다. 부인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홍수(洪鐩)의 딸이다.

현종~숙종 시대 활동

1669년(현종 10) 사마시(司馬試)에 생원(生員)으로 합격하였고, 1675년(숙종 1) 통덕랑(通德郞)으로서 숙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증광시(增廣試)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그 뒤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가 되고, 1678년(숙종 4)에 병조 좌랑(佐郞), 홍문관(弘文館)수찬(修撰),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이 되었다. 1679년(숙종 5) 6월 초에 사간원(司諫院)정언(正言)이 되었다가 얼마 안 되어 송화현감(松和縣監)에 보임(補任)되었다. 1682년(숙종 8) 1월에 통신사(通信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일본에 다녀왔다. 1690년(숙종 16) 3월 초에 승정원(承政院)승지(承旨)가 되었다. 1691년(숙종 17) 3월경에 의금부(義禁府)동지사(同知事)가 되었다가 7월에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가 되었다. 1692년(숙종 18) 1월 청(淸)나라에서 사신이 오자 접반사(接伴使)로 활약하였다. 1693년(숙종 19) 1월에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가 되었고, 그 뒤 병조 참판(參判)이 되었다.

성품과 서예

박경후는 어려서부터 근검(勤儉)하고 학문에 힘썼다고 한다. 글에 능하여, 주서(注書)가 된 지 10일 만에 응제(應製)에서 우등(優等)하였다. 또 글씨를 잘 써서 당대에 이름이 났으니, 양주(楊州)의 「좌찬성 박대립 비(左贊成朴大立碑)」와 하양(河陽)의 「통제사 김시성 비(統制使金是聲碑)」 등의 유필(遺筆)이 남아 전한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 『해사일기(海槎日記)』
  •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