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포(條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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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상시(奉常寺)에서 만든 커다란 편포(片脯).

개설

국가의 제향에 쓰는 육포는 봉상시에서 만드는데, 이를 조포(條脯)라 하였다. 중포(中脯)는 민간의 제사에 쓰는 어육포인데, 나중에는 나라의 제사에도 썼다.

만드는 법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의하면, 편포는 봉상시에서 만들어 제향에 쓰는 것으로 이름을 조포라 하였다. 편포를 만들려면 소고기를 기름과 힘줄을 걷어내고 잘 드는 칼로 난도하여 진흙같이 만들어 남으로 해자(垓子: 능, 원, 묘 따위의 경계)처럼 틀을 만들되 길이 1자, 너비 3~4치와 두께 2치가량으로 만든다. 깨끗한 베 보자기를 펴고 이긴 고기를 넣고 베보자기로 덮고 발로 밟기를 누룩 디디듯 하여 내어 말린 후에 독 속에 넣어 두면 흰옷이 날 것이니 2~3월, 7~8월에 만든다.

연원 및 용도

봉상시가 제향에 쓰는 제물은 정결하게 해야 하는데, 1614년(광해군 6)에 중포가 불결하고 다른 고기도 섞여 있어 대신 조포로 하기로 하였다. 조포에는 생산한 고을 이름을 새기도록 하고, 조포의 길이와 두께는 중포와 다르더라도 무게는 같게 하여 정결하게 만들도록 해사로 하여금 각별히 상정(詳定)하게 하여, 대사(大祀)중사(中祀)에 사용하도록 하였다(『광해군일기』 6년 6월 18일)(『광해군일기』 6년 7월 3일).

1638년(인조 16) 양사가 제향에 말린 꿩으로 중포를 대신하자고 의논하였다. 우포(牛脯)를 사용하고자 하여도 소를 이미 얻을 수 없고, 노루와 사슴을 사용하고자 하여도 잡물을 섞어 쓰게 되는 폐단을 끝내 막을 수 없다. 여염의 제사에는 모두 포를 사용하는데, 종묘사직에만 사용하지 않는 것은 매우 미안한 일이니 부득이하다면 노루와 사슴으로 조포를 만들어 대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인조실록』 16년 5월 7일).

지방에서 올리는 육포 공물의 분량에 대해 종종 감면 요청이 있었다. 태종대에는 정향포(丁香脯)를 줄여 이제부터 민간의 중포의 예와 같이 하여 적당하게 수를 정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태종실록』 12년 5월 19일). 정향포는 나라의 제사에 쓰기 위하여 특별히 건조하여 만든 어육포이다. 세종대에는 하삼도(下三道)의 노루가 거의 다하여 조포와 편포를 갖추어 올리기 어렵게 되었으니 수량을 감하도록 하였다(『세종실록』 16년 7월 26일). 성종대에는 사재감(司宰監)이 올리는 잡물 중 백조포(白條脯)는 2년으로 기한하여 3분의 2를 감하기를 청하였다(『성종실록』 4년 4월 28일). 1717년(숙종 43) 함경도의 각종 토공(土貢) 중 중포, 문어(文魚)를 감면하도록 명하였다(『숙종실록』 43년 7월 13일).

중국에 보내는 진헌물로 대포(大脯), 편포, 중포, 녹대포(鹿大脯), 녹중포(鹿中脯), 녹편포(鹿片脯) 등을 보냈다(『성종실록』 8년 6월 21일). 궁중의 연회에 쓰이는 포는 소고기포[黃脯], 편포, 관포(官脯), 건치(乾雉) 4가지가 나온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포에 관한 내용이 있다. 무슨 포든지 고기가 연하고 기름이 없고 심줄이 없어야 쓰는 고로 우둔이나 도간이나 대접이 좋고 홍두깨는 빛이 희어 못 쓴다. 아무쪼록 맛 좋고 빛 검은 장이 있어야 좋으나 소금으로도 많이 한다. 말릴 때에 포 옆에다가 숯덩이도 놓고 나뭇가지도 놓아서 날짐승이 쪼아가지 않도록 한다. 편포를 먹을 때는 조각조각 썰어 돼지기름을 발라 구워 먹는다. 돼지기름이 없으면 참기름을 발라 구워도 좋으며 예부터 술안주로 쓰였다.

참고문헌

  • 『규합총서(閨閤叢書)』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 황혜성 외, 「궁중의 식생활」, 『한국음식대관』6권,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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