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매(鄭順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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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77년(정조 1)~1801년(순조 1) = 25세]. 조선 후기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천주교도로,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바르바라. 거주지는 서울이다.

정조~순조 시대 활동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에서 태어나 1795년(정조 19) 오빠 정광수(鄭光受)와 그의 부인 윤운혜(尹雲惠) 부부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오빠 부부가 1799년(정조 23) 서울 벽동으로 이사를 하자 그도 함께 서울로 올라와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동정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신의 의지가 비신자들에게 알려지면 소동이 날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허씨(許氏)라는 가공의 인물과 혼인을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머리를 올리고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서울에서 오빠 부부와 함께 성물과 서적을 보급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1800년(순조 즉위년) 10월에는 주문모(周文謨)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사학징의』],[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발발하자 정순매(鄭順每)는 그해 2월 강완숙(姜完淑)·윤점혜(尹占惠) 등과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혹독한 신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하였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결국 그는 5월 22일 사형판결을 받고, “고향으로 돌려보내 처형하여 백성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하라”라는 명령에 따라 여주로 이송되어 5월 24일 참수형을 받아 사망하였다.(『순조실록』1년 5월 22일)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사학징의(邪學懲義)』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10, 2004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하느님의 종 125위 약전』,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