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충(朴由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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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72년(선조 5)~? = ?]. 조선 중기 선조∼광해군 때 활동한 문신. 장악원(掌樂院)첨정(僉正)이다. 자는 효이(孝移)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거주지는 충청도 직산(稷山)이다. 아버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박지성(朴知性)이며, 어머니 박씨(朴氏)는 박귀령(朴龜齡)의 딸이다. 부인 임씨(任氏)는 임달신(任達臣)의 딸이다.

선조∼광해군 시대 활동

1603년(선조 36)에 증광시(增廣試)문과(文科) 을과(乙科)로 급제하였으나, 이 시험이 부정으로 치러졌다 하여 논란이 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북청판관(北靑判官)이 되고, 1614년(광해군 6)에 장악원 첨정이 되었다. 그러나 임신한 기녀(妓女)를 높은 곳에 매달아 놓고 세차게 곤장을 쳐서 죽게 한 죄로 파직 당하였다.

성품과 일화

그의 성품에 대하여는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패만(悖慢)스러운 인물로서 임신하여 만삭인데다가 병이 심한 기녀에게 무려 50여 대의 곤장을 쳐 4일 만에 모자가 모두 죽게 하였으니, 그 잔혹함이 극에 달하였다고 하였다.[『광해군일기』광해군 6년 7월 13일]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