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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48 기준 최신판



궁관(宮官)으로, 내명부의 정5품 관직.

개설

상의(尙儀)는 내명부 궁관에게 주던 정5품 위호(位號)인데, 같은 품계에 있는 상궁(尙宮)보다 하위의 위치이다. 1428년(세종 10)에 상궁, 상복(尙服), 상식(尙食), 상침(尙寢), 상공(尙功), 궁정(宮正)과 함께 정5품에 속하도록 규정되었다. 이후 『경국대전』「이전(吏典)」 ‘내명부’조에 상궁과 함께 정5품으로 제정된 후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등 몇 차례의 법 개정이 있었으나 조선왕조 말기까지 변동 없이 유지되었다.

담당 직무

내명부 소속 여성들은 크게 내관(內官)과 궁관으로 구분되었는데, 내관은 종4품 숙원 이상의 왕의 후궁들이고, 궁관은 정5품 상궁에서 종9품 주변궁(奏變宮)에 이르는 궁인들을 말한다. 『조선왕조실록』 1428년 3월 기록에 따르면, 품계에 명시된 궁관의 칭호와 직책에 따라 고유한 직무를 구체적으로 정해놓았다. 이때 상의의 주요 역할은 예의(禮儀)와 기거(起居)를 맡고, 또 사빈(司賓)과 전찬(典贊)을 통솔하는 일이었다.

사빈은 정6품으로서 빈객(賓客)·조현(朝見)·연회(宴會)·상사(賞賜)를 맡고, 전찬은 정7품으로서 빈객·조현·연식(宴食)·찬상(贊相)·도전(導前) 등의 일을 맡았다(『세종실록』 10년 3월 8일). 따라서 상의는 사빈, 전찬에 대한 통솔을 통해 의례와 관련된 일을 관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경국대전』에서 사빈의 명칭은 전빈(典賓)으로, 품계는 정7품으로 바뀌었고, 전찬은 품계만이 정8품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상의는 전문직 여성으로 국가로부터 일정한 봉급을 받았다(『순조실록』 3년 12월 25일).

원칙적으로 궁관은 4품 이상의 품계를 승급 받지 못했지만 국왕의 승은을 입으면 후궁 작위인 내관의 품계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여성은 중종의 후궁으로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안씨(昌嬪安氏), 선조의 후궁으로 광해군의 어머니인 공빈김씨(恭嬪金氏), 선조의 후궁으로 인조의 할머니인 인빈김씨(仁嬪金氏),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의 어미니인 숙빈최씨(淑嬪崔氏), 숙종의 후궁인 명빈박씨(榠嬪朴氏),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暎嬪李氏, 정조의 후궁으로 문효세자의 어머니인 의빈성씨(宜嬪成氏), 고종의 후궁인 귀인엄씨(貴人嚴氏) 등을 꼽을 수 있다.

변천

조선시대 궁관에게 내리던 정5품 내명부의 위호 가운데에 하나이다. 1397년(태조 6) 내관의 칭호, 품계 및 정원 등이 처음 제정되었을 때 상의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태조실록』 6년 3월 15일). 이후 1428년 3월, 상의는 상궁, 상복, 상식, 상침, 상공, 궁정과 함께 정5품으로 처음 명시되었다. 정5품 위로는 정1품 빈(嬪)에서 종4품 숙원(淑媛)까지의 내관이 있으며, 아래로는 정6품 사기(司記), 사빈, 사의(司衣), 사선(司膳), 사설(司設), 사제(司製)와 정7품 전언(典言), 전찬, 전식(典飾), 전약(典藥), 전등(典燈), 전채(典綵), 전정(典正) 등이 있다. 이들의 정원은 각 1명씩 모두 7명이었다(『세종실록』 10년 3월 8일).

그러나 『경국대전』 「이전」 ‘내명부’조에서 상의는 상궁과 함께 정5품이 되어 종5품으로 개정된 상복, 상식, 정6품으로 개정된 상침, 상공과는 구분되었으며 정원은 규정되지 않았다. 이 규정은 이후 편찬된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등의 법전에 변함없이 그대로 수록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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