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혜공주(孝惠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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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11년(중종 6)~1531년(중종 26) = 21세]. 조선 제11대 왕인 중중(中宗)의 딸로 공주. 어머니는 중종의 계비(繼妃)로,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윤여필(尹汝弼)의 딸인 장경왕후(章敬王后)이다. 친동생은 제12대 왕인 인종(仁宗)이며, 배다른 동생으로는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아들인 제13대 왕 명종(明宗)이 있다. 연안 김씨(延安金氏)김안로(金安老)의 아들인 연성위(延城尉)김희(金禧)와 결혼하였다.

출생 및 혼인 생활

1511년(중종 6) 중종과 장경왕후의 첫째 딸로 태어난 효혜공주(孝惠公主)는 5세가 되던 1515년(중종 10) 어머니를 잃었다. 1520년(중종 15) 김안로의 아들 김희와의 혼인이 결정되었으며, 이듬해인 1521년(중종 16) 11월 혼인하였다.(『중종실록(中宗實錄)』 15년 12월 14일),(『중종실록』 16년 11월 11일) 1521년(중종 17) 사간원(司諫院)사헌부(司憲府) 등에서 효혜공주의 집을 수리하는 것이 사치스럽다며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이 집은 중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사용한 집이었다. 그러나 중종은 사신이 오는 등의 일로 공사를 정지하였다 다시 하면서 기간이 오래 걸려 그렇게 보일 뿐이라며 공사를 계속하게 하였다.(『중종실록』 17년 3월 11일),(『중종실록』 17년 6월 26일),(『중종실록』 17년 6월 27일) 그리고 1528년(중종 23) 효혜공주가 이질에 걸리자, 공주는 출가하면 친정에 가서 부모에게 문안을 하는 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며 승정원(承政院)사간원(司諫院) 등에서 적극 반대하였으나, 중종은 이전 왕들이 자식을 방문한 예와 효혜공주의 집이 자신의 옛집이라는 이유를 들어 효혜공주를 방문하기도 하였다.(『중종실록』 23년 9월 23일),(『중종실록』 23년 9월 23일),(『중종실록』 23년 9월 24일),(『중종실록』 23년 9월 24일)

21살이 되던 1531년(중종 26) 세상을 떠났으며, 그해 10월 효혜공주의 부마인 김희도 세상을 떠났다.(『중종실록』 26년 4월 20일),(『중종실록』 26년 10월 10일) 한편 효혜공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 동생인 인종은 너무 슬퍼하다 병을 얻을 정도였다.[『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9 「인종조고사본말(仁宗朝故事本末)」]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에 위치한다.

효혜공주는 딸 하나를 두었는데, 파평 윤씨(坡平尹氏)윤원로(尹元老)의 아들 윤백원(尹百源)과 혼인한 김선옥(金善玉)이다. 윤백원은 문정왕후의 조카이기도 하였는데, 숙부 윤원형(尹元衡)이 아버지 윤원로를 숙청하자 그에 대한 원한을 품었다. 그리하여 1563년(중종 18) 이량(李樑) 등과 함께 사화를 일으켜 사림(士林)을 몰아내는 사화(士禍)를 계획하였으나 발각되고 말았다. 이에 관련자들 모두 멀리 유배를 갔으나, 윤백원은 효혜공주의 유일한 사위라는 문정왕후의 뜻에 따라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유배를 갔다.(『명종실록(明宗實錄)』 18년 10월 18일),(『명종실록』 20년 4월 6일)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고봉집(高峯集)』
  • 『성호사설(星湖僿說)』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용재집(容齋集)』
  • 지두환, 『중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