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덕(洪閏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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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54년(단종2)∼1505년(연산군11) = 52세]. 조선 전기 성종~연산군 시대 활동한 문신. 자는 희부(熙夫)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당홍(唐洪)이고, 주거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중추부 첨지사홍경손(洪敬孫)이고, 어머니 풍산김씨(豊山金氏)는 김계학(金繼學)의 딸이다. 사재감 직장홍지(洪智)의 손자이고, 찬성홍경주(洪景舟)의 7촌이다.

성종~연산군 시대 활동

1472년(성종3) 19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20년 동안 대과(大科)에 급제하지 못하다가, 1492년(성종23) 39세로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 급제하였다. 교서관(校書館) 부정자에 보임되었다가 봉상시 참봉, 홍문관 저작, 성균관 박사를 거쳐 1496년(연산군2) 봉상시 주부로 승진하였다. 1497년(연산군3)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었다가, 예조 좌랑으로 옮겼다. 1498년(연산군4) 사간원 헌납으로 승진하였으나, 1년 만에 언사(言事)로 인하여 면직되었다. 이후 성균관 전적, 직강, 사재감 첨정을 역임하고 종부시 첨정으로 옮겨 춘추관(春秋館)편수관(編修官)을 겸임하였다. 1502년(연산군8) 모친상을 당하여, 3년 상을 마치고 봉상시 첨정에 임명되었다가, 승문원 교감(校勘)을 거쳐 봉상시 부정로 승진하였다. 1505년(연산군11) 2월 19일 병으로 돌아가니, 향년이 52세였다.

성품

홍윤덕은 성품이 단아하고 바르며 온화하여, 사람들에게 은의(恩意)가 있었다고 한다.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기도 적성(積城) 상수역(湘水驛) 북쪽 송산리(松山里) 선영에 있는데, 부인과 합장하였다. 증손자 졸옹(拙翁)홍성민(洪聖民)이 지은 행장(行狀)이 남아 있다.(『졸옹집(拙翁集)』 권9) 죽은 뒤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부인 고령신씨(高靈申氏)는 안동부사(安東府使)신송주(申松舟)의 딸이고, 공조 참판신장(申檣)의 손녀이다. 자녀는 1남 1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예문관 대교홍계정(洪係貞)이고, 딸은 생원 이원(李遠)의 처가 되었다. 손자 홍춘경(洪春卿)은 황해도관찰사를 지냈고, 홍춘년(洪春年)은 강원도관찰사를 지냈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졸옹집(拙翁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