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무(洪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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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명(明)나라 태조(太祖) 대에 사용한 연호로(1368년~1398년), 조선(朝鮮)에서는 태조(太祖)가 사용한 연호.

개설

중국 명나라 초대 황제인 태조주원장(朱元璋)의 연호이다(1368년~1398년). 태조는 연호인 홍무(洪武)를 본 따 홍무제(洪武帝) 또는 홍무 황제(洪武皇帝)라고도 불리며, 중국에서는 이때부터 한 황제가 하나의 연호만을 사용하는 ‘일세일원제(一世一元制)’가 확립되었다.

1368년 명나라를 건국한 태조는 원(元)나라를 북쪽으로 몰아내고, 한족(漢族) 왕조를 복원한 후, 명나라 사회를 안정시키며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홍무 연호는 1398년 태조가 사망하면서 그의 손자인 혜제(惠帝)가 황위를 이어받아 이듬해 ‘건문(建文)’으로 개원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그런데 태조의 넷째 아들로 제 3대 황제인 영락제(永樂帝)성조(成祖)가 <정난(靖難)의 변(變)>을 통하여 1402년 황위에 오른 후 혜제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건문의 연호를 폐지하였다. 대신 이 기간을 태조의 연호인 홍무로 표기하였는데, 홍무 32년부터 35년까지가 바로 이때이다. 그러다가 명나라 제 13대 황제인 만력제(萬曆帝)신종(神宗)이 건문 연호를 다시 복원하였다.

한편 홍무 25년 조선이 개국하는데, 조선은 고려(高麗)와 마찬가지로 독자 연호 대신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홍무 연호는 고려 우왕(禑王) 4년을 시작으로 조선태조 7년까지 사용되었다. 이렇듯 조선에 독자 연호가 없었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등장하는 홍무 연호는 주로 연대(年代) 표시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정치 · 사회 · 문화적 변화 및 자연 재해 등의 현상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중국의 예를 참조하던 맥락에서 홍무 연호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조선에서는 중국 명나라 태조 때에 간행된 예서(禮書) 『홍무예제(洪武禮制)』와 운서(韻書)『홍무정운(洪武正韻)』을 참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보는 바와 같이 서명에 홍무 연호가 포함되어 있어, 『조선왕조실록』 곳곳에서 이 연호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명사(明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