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구로도(香山九老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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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향산에서 8명의 노인 친구들과 연 모임을 그린 그림.

개설

백거이는 당나라 중기의 위대한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이고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이다. 그는 800년에 29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최연소 급제한 뒤 842년에 형부(刑部) 상서(尙書)를 끝으로 은퇴하여 고향인 향산으로 돌아가 은거하였다.

이 시기 백거이는 노인 친구 8명을 초대하여 주연(酒宴)과 시회(詩會)를 가졌는데 후세인들은 이 모임을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라고 부르며 덕망 있는 노인들의 모임을 이르는 대명사로 사용하였다.

향산구로도(香山九老圖)는 백거이의 향산구로회 장면을 그린 것으로 송대(宋代) 이후 고사 인물화의 화제(畫題)가 되었다.

제작경위

백거이의 시집인 『백향산시집(百香山詩集)』의 「칠노회시병서(七老會詩幷序)」에 의하면 845년 3월 24일에 백거이보다 나이가 많은 호고(胡杲), 길민(吉旼), 유진(瀏眞), 정거(鄭據), 노진(盧眞), 장혼(張渾)이 향산에 있는 백거이의 집 이도리(履道里)에 모였다. 7명의 노인들은 나이 든 사람을 청하여 차례로 앉히고 시가(詩歌)를 지으며 즐기던 모임인 상치회(尙齒會)를 하였는데 술을 마시며 칠언칠운시(七言七韻詩)를 차례로 지으며 흔치 않은 모임에 참여한 데 대해 참석자 모두 기뻐하였다. 이 모임에는 적겸모(狄兼謨)와 노정(盧貞)이라는 인물도 참여했으나, 당시 70세가 되지 않아 정식 열(列)에는 들지 못하였고 이후 70세 이하의 노인이 구로회에 참석하고자 할 때 전례(前例)가 되었다.

3월에 7명의 노인이 참석했던 칠로회(七老會)는 같은 해 여름, 2명의 노인이 더 들어와 구로회(九老會)가 되는데 136세의 이원상(李元爽)과 95세의 승려 여만(如滿)이 참여하였다. 이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쓰고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붙였는데 이것이 향산구로도의 기원이다. 향산구로회는 사회적 지위와 성공에서 벗어나 나이와 친교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단순히 ‘구로(九老)’, 연호를 따라 ‘회창구로(會昌九老)’, 지역명을 따라 ‘향산구로(香山九老)’, ‘낙중구로(洛中九老)’ 등으로 불렸다. 이후 나이가 들어 은퇴한 70세 이상의 문인들 모임인 기로회(耆老會)의 전거가 되어 이를 따라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송나라 때 문언박(文彦博), 부필(富弼) 등이 중심이 된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 이방(李昉)의 지도구로회(至道九老會)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기로회 모임의 전통이 유입되어 고려시대 최당(崔讜)이 해동기로회(海東耆老會), 조선시대 이황(李滉)이 분양구로회(汾陽九老會) 등을 결성하였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국가기관으로 확대되어 기로소(耆老所)가 설치되었다.

내용 및 특징

송대 이후 향산구로회의 장면은 고사인물화로 많이 그려졌다. 향산구로도는 문인아집도(文人雅集圖) 형태로 그려졌으며 은퇴한 문인들의 이상적인 삶을 표현하였다.

남송시대 활동했던 유송년(劉宋年)이 그린 ‘구로도’가 대표적인데 9명의 노인들이 2명, 4명씩 무리를 지어 정자 안에서 그림을 함께 감상하며 바둑을 두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그렸다. 모자에 꽃을 꽂고 백거이의 시에 취해 춤을 추는 노인의 도상은 이후 기로회도에도 많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초기 일본에 건너가 활동했던 수문(秀文)이 그린 ‘향산구로도’가 현재 일본 히라다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은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주변을 감상하는 자유로운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한철의 ‘향산구로회’는 9명의 노인들이 각기 다른 색의 옷을 입고 두루마리를 감상하는 장면이 그려졌는데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향산구로도는 만 70세 이상의 사대부로 구성된 기로회의 모습을 그린 기로회도(耆老會圖), 일반 문인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契會圖)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참고문헌

  • 송희경, 『조선후기 아회도』, 다할미디어, 2008.
  • 윤진영, 「조선시대 계회도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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