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가미(帖價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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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첩을 팔아 마련한 곡식.

개설

첩가미는 조선 정부가 흉년에 부족한 진휼곡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명첩을 발매하여 마련한 쌀이었다. 첩가미는 진휼청(賑恤廳)에 의하여 지역별로 분산·비축되다가 기민(饑民)에게 건량(乾糧)으로 지급되거나 죽을 쑤어 주는 밑천으로 사용되었다.

내용 및 특징

1. 첩가미의 모집과 관리

조선시대 흉년으로 기근이 들고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면 정부나 각도 관찰사는 진휼곡을 확보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때 진휼청과 각도 감사는 진휼곡 모집의 한 방안으로 왕에게 공명첩 발매를 청하였다. 공명첩은 비변사의 논의 후 왕의 재가로 이조(吏曹)·병조(兵曹)에서 제작하여 해당 기관에 전달되었다. 진휼청이나 각도 감사는 넘겨받은 공명첩을 다시 각 군현에 분배하였다. 이에 지방 수령은 수하 향임(鄕任)·면임(面任) 등을 동원하여 다소 부유한 사람을 찾아가 공명첩을 구입하도록 권유하고 곡식을 모았다. 이와 같이 공명첩을 판매하여 마련한 곡식을 첩가미 또는 공명첩가곡(空名帖價穀)이라 하였다(『숙종실록』 44년 10월 11일).

첩가미는 공명첩이 판매된 도별로 분산되어 보관되었으며 진휼청에 의하여 총괄 관리되었다. 그리고 첩가미는 주로 굶주린 백성을 진휼하는 밑천으로 사용되었다. 대체로 당해 연도에 수집된 첩가미는 죽을 쑤어 주거나 건량으로 나누어 주는 데 사용되었으며, 쓰고 남은 곡식은 환곡(還穀)에 편입되어 진자(賑資)로 비축되었다.

한편, 기민에게 지급된 첩가미를 환수하는 문제를 두고 숙종대에는 많은 논란이 일었다. 즉, 첩가미는 관작을 팔아 기민을 구제하는 곡식이므로 다시 기민에게서 환수하는 것은 구차스러울뿐더러 실제 도로 거두기도 어렵다는 입장이 있었다. 반면, 공명첩 구입자가 늘어나는 추세에서 계속 공명첩을 팔아 진휼곡을 마련하기 어려우므로, 나누어 준 곡식을 환수하여 후일 진휼하는 밑천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러한 논란은 결국 진휼곡을 환수하지 않고 탕감(蕩減)해 주는 방향으로 정리가 되었다(『숙종실록』 12년 8월 25일).

2. 진휼 시 첩가미의 비중과 성과

첩가미가 각 도의 진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는 1787년(정조 11)의 사례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각 도에서 진휼을 위하여 확보한 진자곡(賑資穀)의 종류와 진휼한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표 1> 1787년(정조 11) 각 도의 진자곡 확보와 진휼 내용

※ 단위: 기민 수는 명(名), 진자곡은 쌀·석(石). 괄호 안은 백분율(%).

위의 표에서 수령 자비곡은 지방관인 수령이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곡식이며, 부민 원납곡은 부유한 백성이 자원하여 납부한 곡식을 일컫는다. 공명첩가곡의 비중은 전체 진자곡 중에서 대략 10% 내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첩가미는 진휼이 시작되기 전에 구급(救急)의 밑천으로 사용되거나 굶주린 백성에게 죽을 쑤어 주는 데 사용되었다. 또는 백급(白給)이라 하여 무상으로 지급되는 곡식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아사(餓死) 상황에 직면한 기민에게 첩가미는 가장 요긴한 진휼곡이었다.

변천

임진왜란 이후 첩가미를 재원으로 활용하고, 진휼에 적극 활용하던 방식은 19세기 전반까지 사료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그러나 중앙과 지방관아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환곡 규모가 증가하면서 첩가미의 모집과 운영은 점차 기능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일성록(日省錄)』
  • 문용식, 『조선 후기 진정(賑政)과 환곡 운영』, 경인문화사, 2001.
  • 서한교, 「17·8세기 납속책의 실시와 그 성과」, 『역사교육논집』 15, 1990.
  • 서한교, 「조선 현종·숙종대의 납속 제도와 그 기능」, 『대구사학』 45, 1993.
  • 문수홍, 「조선시대 납속제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6.
  • 서한교, 「조선 후기 납속 제도의 운영과 납속인의 실태」, 경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
  • 정형지, 「조선 후기 진휼 정책 연구: 18세기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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