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음(正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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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도(韻圖)와 운서(韻書) 등에 부합하는 표준 중국 음, 또는 훈민정음을 줄인 말.

개설

인도에서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브라만교 최고의 경전 『베다(veda)』를 후세에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음운을 기술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에 불교측 활동을 통해 이런 연구가 전해지면서 동양적 언어 사상을 형성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정음관이다. 정음관은 송나라 때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성음창화도(皇極經世·聲音唱和圖)』를 통해 정음(正音)·정성(正聲)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명나라 초기에 편찬된 『홍무정운(洪武正韻)』의 범례(凡例)에서 정음을 "오방(五方)의 사람들이 모두 능히 통해(通解)할 수 있는 소리"로 규정함에 따라 표준 중국 음을 나타내는 말로 정립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419년(세종 1)에 『성리대전(性理大典)』이 수입되면서 거기에 수록되어 있던 소옹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를 통해 송나라 때 형성된 정음관이 전래되었다. 세종은 이러한 정음관을 바탕으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곧 훈민정음을 창제하였고, 이어서 『동국정운(東國正韻)』을 편찬케 하여 우리의 한자음을 표준화함으로써 정음 정책을 완성하였다. 그래서 세종 때는 정음이 훈민정음의 준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중국 송나라 때 소옹의 정음·정성 사상은 명나라 때에 이르러 『홍무정운』의 편찬으로 이어졌다. 그 「서문」에는 "운학(韻學)이 강동에서 일어나 정음이 크게 손상되었으므로 고칠 점이 많으니, 널리 쓰이고 오방지인(五方之人)이 다 통할 수 있는 중원 아음(雅音)으로 표준을 삼아 『홍무정운』을 편찬함으로써 천고(千古)의 누습(陋習)을 씻을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정음·정성 사상이, 언어의 방언적인 분포나 변천을 ‘누습’으로 보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방향으로 언어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인식으로 발전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정음관은 그대로 조선으로 전해졌다. 훈민정음 창제에도 참여한 신숙주(申叔舟)는 『동국정운』「서문」에서 우리 한자음과 중국 원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지적하였다(『세종실록』 29년 9월 29일). 첫째는 중국과 달리 우리 한자음에는 유성음에 해당하는 전탁음(全濁音)이 없다는 점이다. 둘째는 우리 한자음에서는 상성(上聲)거성(去聲)의 구별이 없으며, 원래 ‘ㄷ’받침[-t]인 입성(入聲)의 한자음이 우리식으로 발음되면서 받침이 ‘ㄹ’[-l]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우리 한자음에는 ‘ㅋ’을 초성으로 하는 글자가 거의 없다는 점을 꼽았다. 마지막으로 우리 한자음에는 설음(舌音)의 설두(舌頭) 대 설상(舌上), 순음(脣音)의 순중(脣重) 대 순경(脣輕), 치음(齒音)의 치두(齒頭) 대 정치(正齒)의 구별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러고는 "우리 한자음의 난맥상을 크게 바로잡지 않는다면, 날이 갈수록 혼란이 심해져서 마침내 구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를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중국 음과 차이가 생긴 것을 성음(聲音)이 어지러워진 것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잘못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음관을 표방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관점을 『동국정운』에도 반영하였다. 중국의 정음을 참조하여, 당시 우리말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ㆆ, ㅿ’ 등을 초성에 배정하고, ‘ㅭ, ㅇ, ㅸ’ 등을 종성에 사용하는가 하면, ‘ㆇ, ㆊ, ㆈ, ㆋ’ 등의 이중, 삼중의 모음을 중성에 사용하는 등 중국의 본토 자음에 부합하는 표준 한자음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중국에서 전래된 정음관을 바탕으로 『동국정운』을 편찬하여, 우리 한자음의 표준음을 제정하고 표기 체계를 확립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복고주의와 규범화에 치중하여, 현실 한자음을 반영하는 데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조선시대 세종은 우리 한자음을 통일하기 위해 『동국정운』의 편찬을 진행하는 한편, 중국과의 발음상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홍무정운』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할 것을 명하였다. 성삼문(成三問)은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서문」에서 이 책의 편찬 목적이 중국어 음을 바르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표준 중국어 음을 정립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역학(譯學)의 발달로 이어졌다. 세종대 이후 조선 조정에서는 중국과의 외교와 무역 등을 위해 정책적인 차원에서 역학의 진흥에 힘을 쏟았는데, 그 과정에서 중국어 음의 정음과 속음에 대해 비교적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우선 신숙주는 『사성통고(四聲通考)』 범례(凡例) 제1조에서, "운도(韻圖)와 운서(韻書) 등 여러 서적과 지금 중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바로써 그 자음을 정하고, 또 실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중국 현실 어음(語音)이지만 운도나 운서의 음과 맞지 않는 것은 수록 글자마다 원래의 반절(反切) 아래 속음(俗音)이라고 표시하였다."라고 설명하였다. 현실에서 사용되는 발음 중 운도나 운서 등에 부합하는 것을 정음이라 하고, 부합하지 않는 발음을 속음이라 하여 서로 구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정음과 속음을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이 된 운서는 『홍무정운』이었다.

다음으로 중종대의 학자 최세진(崔世珍)은 『사성통해(四聲通解)』 범례 제23조에서, "무엇을 바른 소리로 삼을 것인지 알고 싶은가? 각 지방 사람들이 다 통할 수 있는 음이 정음이다."라고 하였다. 『홍무정운』「서문」에 드러난 정음관을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그는 번역한 『노걸대·박통사(老乞大·朴通事)』 범례 정속음조(正俗音條)에서 "무릇 글자에는 정음이 있고, 또 속음이 있으므로 『사성통고(四聲通考)』에서는 먼저 정음을 위에 적고, 다음으로 속음을 아래에 적었다. 지금 중국인이 말하는 것을 보면, 한 자를 혹은 속음으로 읽기도 하고, 혹은 정음으로 읽기도 하며, 혹은 두세 개의 속음으로도 읽는데, 『사성통고』에서는 기록하지 않은 것이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보면 최세진은 당시 중국음에 대하여 모든 글자에 정음과 속음이 있는데, 글자에 따라 혹은 속음으로 혹은 정음으로 읽었으니, 이는 곧 이들이 성격은 다르지만 당시 현실음에 모두 사용되고 있었음을 인식한 것이 된다. 말하자면 운도나 운서 등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정음과 속음을 구분한 신숙주의 관점을 계승하면서, 당시의 현실음에 대한 좀 더 정밀한 관찰 결과를 보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종대에는 ‘훈민정음’을 줄여서 ‘정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정인지(鄭麟趾)는 해례본(解例本) 『훈민정음』의 「서문」에서 "정음은 어떤 계통을 이어받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다.", "정음 28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이를 만들었다[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세종실록』 28년 9월 29일)고 하여, 정음을 훈민정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다. 훈민정음에서 ‘훈민’을 빼고 ‘정음’으로 줄인 것은, 세종이 창제한 글자에는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글자’라는 의미 외에 ‘세상의 모든 말을 다 표기할 수 있는 글자’라는 의미도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변천

정음관은 서경덕(徐敬德)의 『성음해(聲音解)』, 최석정(崔錫鼎)의 『경세정운도설(經世正韻圖說)』, 황윤석(黃胤錫)의 『이수신편(理藪新編)』 등을 통해 조선시대 후기까지 이어졌다.

다만, 정조대에 간행된 『전운옥편(全韻玉篇)』에서는 610여 자에 걸쳐 다음과 같이 정음과 속음을 주기(註記)하였다.

1) 해당 자음을 제시하고 정음을 밝힌 경우(220여 자)

崇 종正슝 床 장正상 尨망正방

2) 해당 자음을 제시하고 속음을 밝힌 경우(390여 자)

宅 ᄎᆡᆨ俗ᄐᆡᆨ 巾 근俗건 屹 을俗흘

3) 해당 자음을 제시하고 정음과 속음을 모두 밝힌 경우(1자)

偪 벽正픽俗핍

앞에서 중국 음을 정음과 속음으로 구분한 것과 달리, 여기서는 우리 한자음을 기준으로 중국 운서의 한자음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으면 정음으로, 그렇지 않으면 속음으로 판단하였다. 오늘날 유통되고 있는 자전들은 이러한 정음·속음에 관한 구분을 계승하고 있다.

참고문헌

  • 강신항, 『수정증보 훈민정음연구』,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3.
  • 박창원, 『훈민정음』, 신구문화사, 2005.
  • 정경일, 『규장전운·전운옥편』, 신구문화사, 2008.
  • 심소희, 「동아시아 지역의 언어관-정음 사상의 연구」, 『중국언어연구』10, 2000.
  • 주성일, 「신숙주와 최세진의 중국어 정음관」, 『중국학보』5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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