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옹주(貞信翁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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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52년(단종 즉위년) = ?]. 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太宗)의 딸로 옹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태종의 후궁으로, 영월 신씨(寧越辛氏)검교(檢校)공조 참의(參議)신영귀(辛永貴)의 딸인 신신빈(辛信嬪)이다. 친오라버니는 함녕군(諴寧君)과 온녕군(溫寧君)이고, 친동생들은 정정옹주(貞靜翁主), 숙정옹주(淑貞翁主), 소신옹주(昭信翁主), 숙녕옹주(淑寧翁主), 숙경옹주(淑慶翁主), 숙근옹주(淑謹翁主)이다. 부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영평군(鈴平君)윤계동(尹季童)이다.

출생 및 혼인생활

정신옹주(貞翁信主)는 태종과 신신빈의 사이에서 2남 7녀 중 장녀로 태어났는데, 어머니 신신빈은 본래는 원경왕후(元敬王后)의 나인이었다. 이 같은 어머니의 신분은 정신옹주의 혼인에 큰 영향을 주었다. 태종은 정신옹주의 신랑감을 찾기 위해 점쟁이 지화(池和)를 보내 강원도 춘천군지사(春川郡知事)를 지낸 바 있는 이속(李續)을 찾아가 그 아들의 사주를 묻게 했는데, 이속은 궁인에게서 태어난 옹주와는 혼인시킬 의사가 없다고 퇴짜를 놓았다. 이에 분노한 태종은 이속의 말이 심히 불공하다며 이속을 잡아가두고 매질한 뒤 폐서인으로 강등시켰다.(『태종실록』 17년 9월 2일)

1416년(태종 18) 정신옹주는 형조 판서(判書)윤향(尹向)의 아들 윤계동(尹季童)과 혼인하였고, 윤계동은 영평군에 봉해졌다.(『태종실록』 18년 1월 26일),(『태종실록』 18년 3월 2일) 그러던 중 윤계동은 을부(乙富)와 박흥(朴興) 등과 궁에서 기르는 매를 훔친 일에 연루되어 영평군 직첩이 거두어졌고 풍양(豐壤)에 안치되었다.(『세종실록』 7년 10월 10일),(『세종실록』 7년 10월 21일) 이때 정신옹주도 함께 풍양에 가 있었는데, 이에 배다른 오라버니이자 임금인 세종(世宗)은 옹주가 걱정이 되어 다시 윤계동을 서울로 불러들였다.(『세종실록』 8년 3월 26일) 그 후 몇 년 뒤 세종은 윤계동을 영평군에 다시 제수하였다.(『세종실록』 11년 9월 30일)

한편 정신옹주는 1452년(단종 즉위년) 9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단종실록』 즉위년 9월 26일)

묘소와 후손

정신옹주의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高揚市) 관산동(官山洞)에 있다.

정신옹주는 윤계동과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는데, 1남은 윤삼원(尹三元)이며, 1녀는 이파(李波)와 결혼하였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지두환, 『태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