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선(摺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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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부챗살에 종이를 붙여 만든 부채.

내용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어서 접부채라고도 하는 접선(摺扇)은 다른 말로 접첩선(摺疊扇)이라고도 한다. 접선은 부챗살이 50살, 40살, 30살이 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채와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견훤조에 나오는 ‘공작선(孔雀扇)’이다. 이후 1076년(고려 문종 30) 고려의 사신으로 송나라에 갔던 최사훈(崔思訓)이 접는 부채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에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10년(태종 10) 명나라 사신에게 흰 접부채 100자루를 주었으며, 1426년(세종 8)에도 역시 명나라 사신에게 방구부채 10자루와 접부채 88자루를 하사하였다고 나와 있다(『세종실록』 8년 5월 4일). 또 1454년(단종 1)에 명나라 사신에게 접부채 50자루를 회사품(回賜品)으로 보냈고, 1622년(광해군 14)에는 감군 접대 잡물로 백선(白扇) 224자루과 유선(油扇) 1,380자루 등을 마련했고, 이전에도 백선 1,800자루, 유선 9,000자루를 여러 차례에 걸쳐 증답(贈答)의 명목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광해군일기』 14년 4월 18일).

특히 우리나라 접부채는 송나라 때부터 원·명·청에 이르기까지 주로 국교품으로서 많은 양이 중국에 보내졌다. 또한 일본 부채가 국교품으로 들어오기도 했는데, 1421년(세종 3)에는 부채 20자루가, 1474년(성종 5)에는 100자루, 1504년(연산군 10)에는 왜선(倭扇) 400자루를 전라도로부터 봉진(封進)하게 하였다는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부채 또한 상당한 양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용례

禁漆扇 司憲府上言 全漆 難繼之物 各殿歲進摺扇 皆用漆 虛費國用 今後除進上外 皆用白質 以節國用 從之(『태종실록』 10년 4월 26일).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