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진(封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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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환된 외교문서의 예물 목록인 별폭(別幅)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예물 헌상을 의미함.

내용 및 특징

봉진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진상품을 올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조선후기에는 일본 측에서 조선 측에 예물을 헌상하는 것을 봉진으로 칭하자고 해서 주목된다. 1631년(인조 9)에 시작되어 1635년(인조 13)에 끝난 국서개작사건(일본에서는 柳川一件)이 종결된 이후 덕천막부(德川幕府, [도쿠가와막부]) 에서는 지금까지의 외교 의례를 정비하고 막부가 직접 외교문서를 관리하는 시스템인 이정암윤번제(以酊庵輪番制)를 실시하는 등 대조선외교정책을 개편하였다. 더불어 조선 측에 외교문서인 서계의 형식과 용어사용 등의 개편을 요구하는 한편 대마도주의 조선 왕에 대한 예물 헌상을 진상(進上)에서 봉진(封進)으로 용어를 바꿀 것도 요구하였다. 예물 헌상을 의미하는 ‘진상’은 조공 형식을 의미하는 것이고, ‘봉진’은 사무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용례

奪釜山僉使李廷沃告身 島主平義眞遣使至東萊 府使李星徵 與廷沃行宴享禮 所謂封進倭者 性甚怪惡 行杯之際 欲變舊例 府使據理爭不許 倭暴怒拔劍 叫號躍出 直向府使 前府使不爲動 廷沃恇怯走避之 臺諫以辱國 劾廷沃 下吏奏當杖一百奪告身(『현종실록』 4년 12월 27일)

참고문헌

  • 『변례집요(邊例集要)』
  • 『통문관지(通文館志)』
  •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 손승철, 『근세조선의 한일관계연구』, 국학자료원, 1999.
  • 정성일, 『조선후기 대일무역』, 신서원, 2000.
  • 장순순, 「조선후기 일본서계의 위식실태와 조선의 대응」, 『한일관계사연구』 창간호, 1993.
  • 홍성덕, 「17세기 별차왜의 도래와 조일관계」, 『전북사학』 15,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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